마가렛 대처와 대처리즘
- 최초 등록일
- 2020.06.12
- 최종 저작일
- 20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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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마가렛 대처와 대처리즘"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Ⅰ. 마가렛 대처
Ⅱ. 대처리즘
1) 대처리즘이란?
2) 경제개혁
3) 복지개혁
4) 노조개혁
5) 포클랜드 전쟁
Ⅲ. 대처리즘에 대한 비판과 한계점
Ⅳ. 관련 일화
Ⅴ. 참고문헌
본문내용
1925년 10월 13일 링컨셔 주 그랜샘(Grantham, Lincolnshire)에서 식료품집 둘째 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어린 시절을 그랜샘에서 보냈는데, 그 곳에는 그의 아버지 알프레드 로버츠(Alfred Roberts)가 2개의 식료품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자수성가한 중간계층이었으며 독실한 감리교도였고, 시장을 지낸 경험도 있는 현지의 유명 인사였다. 대처는 이러한 아버지를 매우 존경했고 “인간으로서 필요한 것은 모두 아버지에게서 배웠다.” 라는 말을 자주 했다. 일각에서는 그녀의 집안이 생계를 이어나가기 어려울 만큼 극도로 가난한 것처럼 묘사되지만 생각처럼 가난했던 것은 아니라고 전해진다. 하지만 생가의 가훈이었던 "검소“, ”검약", “자기책임”, “자조노력”의 정신은 아버지를 통해 대처에게도 현저하게 계승되었고, 빅토리아 시대의 주요 가치관이었던 체통, 근면, 검약, 책임감, 성실 등과 함께 자유시장의 긍정적 역할을 체득했다. 이러한 가치관의 습득은 대처의 생애와 정치생활에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대처는 장학생으로 옥스퍼드에서 화학을 공부한 후(1943~1947), 1950년에 본격적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하지만, 보수당에서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해 낙선한 후, 결혼(1951)과 출산, 변호사 활동으로 정계를 떠났다. 이후, 대처는 1959년에 보수당 공천으로 출마하여 영국 하원의원에 당선되었다. 당선되고 보수당 정부와 여러 직무를 맡으면서 정치적 부상을 시작한 대처는 영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당대표(1975),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되었고(1979~1990), 19세기 초 이래 가장 오래 연속해서 총리직을 유지했다. 대처는 처칠(Winston Churchill)과 엘리자베스 1세(ElizabethⅠ)에 비견될 정도로 애국적이며 유능하고 강인한 리더십을 발휘하여 현대 영국 사회의 근간을 바꿔 놓았다.
참고 자료
박지향(2007). 중간은 없다 : 마가렛 대처의 생애와 정치. 서울 : 기파랑.
김정은(2008). 20세기 영국과 대처리즘.
원종근(2000). 대처리즘과 영국의 경제개혁. 서유럽연구. 6. 189~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