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삼국시대 및 통일신라 시대의 수전』"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들어가며
2. 삼국시대 수전의 형성과 발전과정
3. 삼국시대 농기구와 수리시설
1) 농기구
2) 수리시설
4. 통일신라의 수전과 수리 관개 시설 증축
1) 통일신라의 수전
2) 통일신라의 수리 관개시설 증축
5. 수전의 발달 영향으로 인한 중앙권력집중화
6. 나가며
본문내용
1. 들어가며
한국고대사회에서 경제의 바탕은 농업이었다. 이러한 농업은 그들의 삶과 밀접하게 연관되어있었고 의식주에 큰 영향을 미쳤다. 농업은 주로 한전(旱田)에서 경작되는 밭농사와 수전(水田)에서 경작되는 논농사가 있었다. 고대사회에서는 한전이 주를 이루었지만 경제적으로 이득을 볼 수 있는 것은 수전이었다. 따라서 삼국시대 및 통일신라 때에 국가와 백성들은 한전경작보다는 수전경작을 더 이용하려 하였다. 수전을 경작하기 위해서는 농기구와 수리관개시설(水利灌漑施設)이 필수적이었다. 농기구는 목제 농기구를 처음엔 사용하였으나 4~5세기경에 철제 농기구가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수전을 경작하는데 더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었고, 또한 수리관개시설은 수전에 필요한 물을 공급해주는 시설이었는데 이는 한해(旱害)로 인한 농사피해를 줄여주었다. 그리고 이러한 수리관개시설을 발달시키기 위해 많은 노동력이 요구되었고 이를 관리할 체제가 필요였는데 이로 인해 이는 국가의 중앙집권적 권력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따라서, 삼국시대 및 통일신라의 수전과 농기구, 수리시설과 이를 통한 중앙집권화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2. 삼국시대(三國時代)의 수전(水田)의 형성(形成)과 발전과정(發展過程)
신석기시대에 이미 각종 작물이 재배되기 시작했지만 아직도 수렵(狩獵), 고기잡이, 채집활동의 비중이 높고 농경의존도는 상대적으로 낮았다. 명실상부하게 농경중심 생업경제가 확립된 것은 청동기시대에 들어와서다. 청동기시대가 되면 한반도 안에서도 각 지역별 자연환경에 따라 서로 다른 농경유형이 확립되었다. 예컨대 서북지방과 동북지방은 밭농사 중심이고 중남부지역에서는 밭농사와 논농사가 함께 발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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