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영전쟁 요약 (1차, 2차)
- 최초 등록일
- 2020.03.31
- 최종 저작일
- 20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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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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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머 리 말
2. 1) 제 1차 중영전쟁
2) 제 2차 중영전쟁
3. 맺 음 말
본문내용
많은 동서양의 학자가 제 1차 중영전쟁을 중국근대사의 시작으로 본다. 그런데 최근에 이르러서 일부 학자들이 중국근대사의 시작을 명말 혹은 명청 교체기로 봐야한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획기로 삼을 수 있는 기준을 어떻데 잡을 것이며 중국근대사의 특징과 내용에 대한 인식과도 관련된다. 그래서 여러 학자가 중국근대사의 시점을 아중영전쟁으로 본다고 하더라도 그들마다 논거가 다를 수 있다. 명청 교체기나 명말 시기도 마찬가지다. 제 1차 중영전쟁을 기점으로 삼는 서양학자들은 중국이 기존의 고리타분한 전통을 깨고 새로운 변화를 맞아 국제적 고립상태가 종말되었다고 생각한다. 반면 중국사학자들은 제 1차 중영전쟁이 제국주의의 시작이며 중국이 반식민지, 반봉건 사회로 전락했다고 생각한다. 멸망이나 명청 교체기를 근대사의 시작으로 보는 경우 어떤 이는 이 시기에 자본주의맹아가 나타났다는 것을 중점으로 보고 있다. 또 다른 이들은 만주족의 성장과 이에 따른 청조 성립을 외부적으로는 서양인의 유입으로 서양학의 전래를 중시한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19세기의 중영전쟁이 중국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것은 맞지만 그것은 이미 1,2세기 이전부터 시작된 변화가 확대된 것으로 바라본다. 따라서 이 학자들이 보기에 1차 중영전쟁은 중국사회의 변화를 설명하기에는 그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미미하다. 이렇게 보면 중국 근대의 시작문제는 획기적인 변화가 내인에 의한 것인지 외인(서양의 충격)에 의한 것인가에 대한 사실인식상의 문제이자 한편으로는 중국사를 연구함에 있어서 두 가지 중 어느 것을 더 우선해야 하는가의 문제이다.
중국근대사 연구는 20세기초 서양 사료에 기초한 외교관계사의 집중되었고 대부분의 서양학자들은 서구의 충격을 기존 중국의 미개한 풍습을 파괴하고 선진문화를 형성한 일등공신으로 바라봤다. 서양학자들의 이와 같은 태도는 내인중시론자들에게 중국 역사의 중요한 변화가 서양이 걸어온 ‘근대성’을 규정한다하여 비판을 받았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