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기 성조기 소각사건
- 최초 등록일
- 2003.11.08
- 최종 저작일
- 20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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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사건의 발단 및 전개
1. 성조기·인공기 소각의 발단.
2. 전개과정.
Ⅱ. 국기 소각사건에 대한 분석.
1. 국기에 관한 의미와 그 이해.
2. 국기 소각에 대한 법 적용.
3. 진보와 보수의 대립.
4. 세계화와 민족주의.
Ⅲ. 맺으며...
본문내용
2002년 6월, 월드컵이 한창이던 시점에서 우리는 두 여중생의 (미군장갑차에 의한) 사망 소식을 접하게 된다. 이는 월드컵의 열기가 가라앉기 시작하던 7월 무렵부터 인터넷을 통해 급속도로 번져나가기 시작하여 사상 유례가 없는 촛불시위를 통해 미국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를 요청함과 동시에 전 국민의 미국에 대한 시각에 부정적인 요소가 커지기 시작했다. 해를 넘기면서 촛불시위는 미국의 대 이라크戰에 대한 전쟁반대와 함께 반미 성향의 시위로 바뀌어가기 시작했다. 더불어 번져나오기 시작한 북핵사태와 이에 대한 미국의 독자적인 노선이 맞물리면서 한국의 미국에 대한 시각은 극도로 악화되기 시작하였다.
많은 열강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라크전을 치르고 난 미국과 이에 대한 한국의 비전투병 파병, 이후에 있었던 노무현 대통령의 방미외교 등은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이하 한총련)을 중심으로 한 이른바 젊은 세대들에게 對美굴욕, 대미종속 등으로 평가되며, 미국에 대한 시각의 악화는 최정점에 이르게 된다. 북핵사태에 대한 원만한 해결을 위해 6자회담을 준비하던 과정에서 미국의 특수부대인 '스트라이커부대'가 경기도 일대에서 실전을 방불하던 훈련을 실시하였다. 아직까지 한번도 국외에서의 훈련을 병행하지 않았던 미국의 특수부대인 스트라이커 부대가 한국에서 훈련을 실시하자, 북핵사태에 대한 긴장은 한층 고조되기 시작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