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민사를 다녀와서(현장답사 레포트)
- 최초 등록일
- 2020.02.25
- 최종 저작일
- 20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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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충민사를 다녀와서(현장답사 레포트)"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머리말
2. 역사
3. 관련인물
4. 관련된 문화제
5. 활용방안
6. 소감
본문내용
1. 머리말
충민사에 관한 레포트입니다. 사전에 충민사에 관련된 인물과 자료들을 찾아보고, 충민사에 다녀온 후 이를 교육적으로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보고 저의 생각을 기록해보았습니다.
충민사의 개요 : 충민사는 전상의 장군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전상의 장군은 1575년 광주 구동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남달리 용력과 무술이 뛰어난 장군은 선조 36년(1603) 29세 때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의 초임 발령 이후 내외관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광해군 9년(1617)에는 일본에 건너가 임진 정유왜란때 끌려간 동포 300여명을 귀국시키는데 공을 세웠다.
인조 5년인 1627년 1월 청나라 3만대군이 압록강을 건너 황주에 이르자 인조는 강화도로, 소현세자는 전주로 피난하고 곧이어 정묘강화를 체결하기에 이르렀다. 이때 장군은 안주성 싸움에서 5일동안 분전하다가 53세의 일기로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난이 끝난 후, 곧 자헌대부 병조판서 겸 지의금부사에 추증되고 이어서 안주로부터 출생지인 광주로 시신을 옮기어 동년 7월 26일 이곳에서 서쪽으로 보이는 평두산에 예장하였다.
1977년 광주 지역민들의 뜻을 모아 장군의 묘소를 지방문화재 기념물 제 32호로 지정하고 1985년 충민사를 준공하였다. 이곳 충민사에는 장군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사당을 비롯,수의문, 정려각, 장군의 유물을 전시한 유물관 등이 있다. 또한 광주고등학교에서 사구동에
이르는 거리를 구성로로 명명하여 그 이름을 기리고 있다.
2. 역사
전상의장군은 정묘호란때 청나라 침략군을 맞아 평안도 안주성에서 빛나는 전공을 세우고 장렬하게 전사한 당대의 명장이다.
장군의 자는 희원이고 호는 구성이며 본관은 천안이다. 선조8년(1575년)에 지금의 광주광역시 서구 구동에서 출생하여, 어려서부터 용력이 남달리 뛰어나고 무술을 좋아하여 선조35년(1603년)29세때 무과에 급제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