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대 중국사상사(주자와 육상산의 생애와 사상)
- 최초 등록일
- 2020.01.09
- 최종 저작일
- 20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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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경상대 중국사상사(주자와 육상산의 생애와 사상)"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Ⅰ. 주자와 육상산의 생애와 사상
1. 주자의 생애와 사상
2. 육상사의 생애와 사상
Ⅱ. 육상산과 주자의 논쟁
1. 성즉리(性卽理) 와 심즉리(心卽理)
2. 무극이태극(無極而太極)논쟁(본체론)
3. 존덕성(尊德性)과 도문학(道問學) - 공부방법에 대한 논쟁 (鵝湖論爭)
본문내용
1. 주자의 생애와 사상
1)주자의 생애
주자(1130~1200)는 자는 원회(元晦)이고 호는 회암(晦庵)이며 이름은 희(熹)이다. 남검(南劍) 우계(尤溪)에서 출생했다. 선조는 대대로 휘주 흡현의 호족으로 아버지 위재(韋齋) 주송은 관직에 있다가 당시의 재상(宰相) 진회(秦檜)와의 의견충돌로 퇴직하고 47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다. 주자는 이 곳에서 13세 때 아버지가 죽자 그 유명(遺命)에 따라 호헌(胡憲)ㆍ유면지(劉勉之)ㆍ유자취(劉子翠)에게 사사하면서 불교와 노자의 학문에도 흥미를 가졌으나, 24세 때 연평(延平) 이동(李侗)선생을 만나 유학에 복귀하여 그의 정통을 계승하게 되었다. 그는 장식(張拭)ㆍ여동래(呂東萊)등과 가까이 했으며, 또 논적(論敵)으로는 육상산(陸象山)이 있어 이들과 서로 사상적 교류를 지속하면서 주자의 학문은 비약적으로 발전 심화하여 중국사상사상 사변철학(思辨哲學)과 실천윤리(實踐倫理)의 체계를 확립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19세에 진사시에 급제하여 71세에 생애를 마칠 때까지 여러 관직을 거쳤으나, 약 9년 정도만 현직에 근무하였을 뿐, 그 밖의 관직은 학자에 대한 일종의 예우로서 반드시 현지에 부임할 필요가 없는 명목상의 관직이었기 때문에 학문에 전념할 수 있었다. 그의 학문을 저서를 통해서 관찰해 보면 46세까지를 전기, 이후 60세까지를 중기, 61세 이후를 후기로 하는 3기(三期)로 대별할 수 있다.
전기는 북송의 선유(先儒)인 주염계(周濂溪)ㆍ장횡거(張橫渠)ㆍ정명도(程明道)ㆍ정이천(程伊川)의 저서교정과 주례에 전념하고, '논어ㆍ맹자' 등은 차기(次期)의 예비사업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즉, 주자의 학문적 기초가 확립된 시기로서 《논어요의(論語要義)》 《논어훈몽구의(論語訓蒙口義)》 《곤학공문편(困學恐聞編)》 《정씨유서(程氏遺書)》 《논맹정의(論孟精義)》를 거쳐 《근사록》에 집약된 것으로 보인다.
참고 자료
조현규, 동양윤리사상의 이해, 새문사, 2002.
박경환외, 논쟁으로 보는 중국철학, 예문서원, 1994.
시마다겐지 저, 김석근, 이근우 역, 주자학과 양명학, 까치학술문고, 1985.
유명종, 주자의 인간과 사상, 동아대학교,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