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민세 안재홍 인물 발제 레포트
- 최초 등록일
- 2019.11.13
- 최종 저작일
- 2019.06
- 7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2,000원
소개글
"독립운동가 민세 안재홍 인물 발제 레포트"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I. 생애 및 활동
II. 사상
1. 신민족주의와 신민주주의
2. 사회민주주의 : 자유민주주의 (만민공화 = 정치평등)
3. ‘국민당’ 결성
4. 민족해방운동론
5. 국학
III. 의의
본문내용
I. 생애 및 활동
민세 안재홍은 1891년, 경기도 진위군 고덕면 두능리의 8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중농(中農) 집안 출신으로 당시 조선 농촌의 중산계급이었다. 임금을 위해 충성을 다해야 한다고 믿는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7-8세 때부터 나랏일에 관심을 가졌고『황성신문』과『독립신문』의 독자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당시 사회상을 파악하며 성장하였다. 유년시절 향리에서 배운 동학운동과 청일전쟁은 안재홍으로 하여금 외세의 침략에 대한 저항의식을 갖게 하였다.
17세까지 안재홍은 향리의 한학 서당에서 여러 덕목을 학습하고 수원의 기독교 교회 산하의 사학에서 애국심과 애국사상을 체화하였다. 그 후 상경하여 황성기독교청년회(현 YMCA) 중학부에 입학하여 이상재, 남궁억, 윤치호 등 당대 지도급 인사들과 생활하였다고 한다. 이 때 안재홍은 정치 외교 서적을 읽으며 양계초(梁啓超)사상에 대해 학습하였고『대한매일신보』와『황성신문』등을 가까이하여 애국 청년으로 성장하였다.
안재홍이 20세가 되었을 때 조선이 일제에 병합되었다. 안재홍은 1910년 이상재와 돌아가신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이윽고 1911년 와세다대학교 정경학부에 입학하였고「조선인유학생학우회」및「동경 YMCA」등 다수의 정치적 활동에 참여하였다. 1913년 안재홍은 상해로 밀항하여 대종교계 항일 혁명 단체인 동제사(同濟社)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그러나 경제적 기반이 미비한 해외에서 국내 활동의 중요성을 느끼고 일본으로 귀환하여 1914년 와세다대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조선으로 돌아와「중앙학교」학감으로 재직하였다가 일제경찰의 압력으로 사임하였고「중앙YMCA」교육부 간사로 재임하였다. 만 26세이던 1917년 안재홍은 단군을 숭배하는 대종교에 입교하였고 단군조선부터 전해져 내려온 한민족 고유의 문화와 사상 및 민족 정체성을 발굴하여 정립하고 보존하고자 다양한 연구를 전개하였다.
참고 자료
김인식, [인물 바로 보기 4] 안재홍, 중도의 길을 걸은 신민족주의자, 내일을 여는 역사, 재단법인 내일을여는역사재단, 210-225
김광린, 국학과 민세 안재홍의 정치사상, 선도문화 13권 0호,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국학연구원
이지원, 일제하 안재홍의 현실인식과 민족해방운동론, 역사와 현실 6, 한국역사연구회, 23-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