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 사상에 관한 연구
- 최초 등록일
- 2019.11.10
- 최종 저작일
- 20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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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론
2. 생애
3. 영암 신학의 사상
1) 일반적인 신학관
2) 사중복음에 의한 신학관
4. 결론
본문내용
서론
근세 조선 말기에 이 땅에 태어나서 근 1세기를 한국교회와 함께 살다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영암 김응조 목사는 한국 성결교회의 선구자이자 한국교회사의 산 증인인 원로 지도자의 한 분 이었다. 영암의 96년 생애는 오직 하나님과 동행한 에녹같은 삶이었으며, 그의 성역 70년 역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한 바울같은 삶으로 일관되었다. 이제 영암은 우리 곁을 떠났으나 그가 생전에 남긴 신앙의 발자취는 우리 앞에 선명히 남아 있다. 그가 말없는 가운데 몸소 실천해 보인 믿음의 모범을 비롯하여 국내외에서 행한 수천회의 설교 및 강연, 그리고 40여년간 신학 강단에서 후학들에게 끼친 신학사상의 영향 등을 우리는 지금부터 차근차근히 연구하여 영암의 신학사상을 정립해야 할 숙제를 안고 있는 것 이다.
생애
한 신학자의 학문적 체계, 그리고 인식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 그의 생애를 살펴보는 것은 필수적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심오한 연구를 통한 체험적인 신앙과 삶의 조화가 두드러진 영암의 경우, 그의 신앙과 사상을 이해하기 위한 그의 생애 조명은 더 없이 중요한 일이다. 영암이 남긴 자서전 [은총 90년]은 단순한 삶의 연대기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신학관이 형성된 과정을 의식하고 쓴 신학적 고백이라는 점에서 영암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그의 생애를 요약 소개함으로써 영암 신앙과 신학의 배경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한다.
영암 김응조 목사는 1896년 음력 12월 3일 경북 영덕군 지품면 낙평동 383번지에서 출생했다. 영암이 태어난 때의 우리나라 종교적 분위기는 대원군이 반기 독교정책으로 많은 천주교인들이 살해를 당하였고 민비와 대원군 사이에는 정권 쟁탈전이 반복되던 때였다. 대원군 정권이 물러나자 종교의 자유가 있게 되어 외국으로부터 선교사가 속속 내한하여 선교운동이 시작되었다. 영암이 스스로 지적한 것처럼 영암은 우리 민족적으로 가장 중요한 시점에 태어났으니 민족복음화를 위한 하나님의 섭리라 하겠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