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고려시대 후기 원 간섭기 하에 놓여있을 때 당시 국왕이었던 충선왕은 자신의 나라에서 유명한 성씨를 가진 가문과 점차적으로 성장한 가문을 중심으로 혼인관계를 맺었다. 이것을 재상지종이라고 칭한다. 충선왕은 자신의 왕권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하였다.
목차
1. 서론
2. 본론
1) 재상지종의 배경
2) 재상지종의 업적
3) 충선왕 이후 재상지종의 양상
3. 결론
4. 참고문헌
본문내용
무신정변 이후 고려(高麗)는 원(元)과 화친을 맺고 개경으로 환도를 했다. 그 사이에 삼별초의 항쟁도 존재하였지만 원에 의하여 제압을 당하였다. 이제 고려는 원에 의한 정치를 강요받게 되었다. 원종 이후로 ‘충(忠)’이라는 왕이 생겨나면서 원에 대한 간섭이 더욱 심화되었던 시기였다. 약 80년간 원의 지배하에 놓여있으면서, 특히 결혼에 관련하여, 고려의 왕은 원의 공주 한명과 결혼해야 한다는 것으로 많은 시련을 겪게 됨으로써, 충렬왕(忠烈王)때부터 시작하여, 공민왕 초 까지 고려는 원의 부마국이 되었다. 이러한 양국의 관계 사이에서 충렬왕과 원 공주 사이에서 태어난 충선왕(忠宣王)은 어렸을 때부터 원나라 수도인 대도에서 머무르면서 살다가 충렬왕과 마찬가지로 원에서 결혼을 하고, 충렬왕의 선위를 받아 왕이 되었다. 그가 원에서 오래 살았다고 하지만, 그는 고려에 와서 왕권 강화를 위하여 다양한 개혁을 세웠다. 하지만 즉위 8개월 만에 원의 공주와 사이가 틀어졌으며, 각종 개혁으로 인한 고려 내부의 반발하는 세력이 존재하였으며, 원의 간섭으로 인해 폐위되어 원으로 돌아갔으며, 충렬왕이 다시 복위하였으며, 충렬왕 사후 다시 즉위하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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