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레포트,시험대비) [빈곤의 역사, 복지의 역사] 중세 전성기의 빈곤(2-3)
- 최초 등록일
- 2019.09.02
- 최종 저작일
- 20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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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중세 전성기의 빈곤
1) 부끄러워하는 빈민에 대한 배려
2) 탁발 수도교단의 출현: 프란체스코 교단과 도미 니쿠스 교단의 활동
3) 스콜라 신학자 자선
본문내용
1) 부끄러워하는 빈민에 대한 배려
빈민들 중에는 자신들이 빈곤의 나락에 떨어졌다는 사실을 특별히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빈곤의 고통을 감수하는 한이 있더라도 공개적인 자선의 대상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사회의 엘리트들은 바로 이 부끄러워하는 빈민들을 최우선적 구제 대산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 배경에는 똑같이 궁핍한 상황에 놓여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느끼는 크기는 박탈감의 크기, 즉 과거와 현재의 생활 수준의 차이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따라서 이들 ’부끄러워하는 빈민‘들은 사회 엘리트 계층의 우선적 자선 대상이 되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중세의 자선이 기독교적 ‘형제애 뿐만 아니라 ‘계급 적 유대감에도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세 세계가 기독 교 세계인 동시에 계급 사회였다는 걸 생각해보면 이러한 현상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길드나 상호부조단체의 활동 역 시 이러한 계급적 유대감 없이는 설명할 수가 없다. 도시의 부르주아와 장인, 심지어는 농촌의 농부들에 이르기까지 곤궁에 빠진 동료들을 방문 하여 이들에게 비공개적인 지원을 함으로써 이들의 체면을 살려주었다. 바깥에서 구걸하지 않고 집 안에서 동료들의 지원을 받는 이들을 우리는 ’비밀빈민‘이라 부르기도 한다. 자기의 친지나 가ᄁᆞ운 이웃이 곤궁에 빠졌을 때 이를 도와주는 행위는 덕스러운 행위였다. 특히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던 사람들에게는 수혜자의 체면을 살려주는 방식의 지원이 일반적이었다. 교회나 병원 등의 자선단체를 매개한 자선을 ‘사회적 자선’ 이라고 할 수 있다면 이러한 방식의 자선, 즉 공여자와 수혜자가 서로 잘 아는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보다 직접적인 자선은 ‘개인적 자선’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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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