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김소월의 생애
2. 시적 경향
3 작품 해석
4 김소월 시의 가치
Ⅲ. 결론
본문내용
서론
김소월은 눈물과 비탄, 그리고 죽음이 지배하는 격한 감정의 시대였던 1920년대 전반을 대표하는 뛰어난 시인이었다. 1920년 『창조』에 <낭인(浪人)의 봄>등 시로 문단에 등단한 그는 초기에 감상적 슬픔의 시를 쓰기도 했지만 그 나름의 7·5조 율격을 독자적으로 심화시켜 당대의 민족적 정서를 한국인의 보편적 정서로 승화시켰다. 김소월의 시가 오늘날에도 널리 애송되고 있는 것은 서정시 본연의 그리움과 사랑을 노래한 데 있다. 다른 어떤 시인도 따를 수 없는 언어적 감각으로 우리의 전통 가락을 살려냄으로써 김소월은 세월이 지나도 빛을 잃지 않는 국민적 시인이 되었던 것이다. 본고에서는 김소월의 생애를 소개하고, 김소월의 시 경향을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그의 시적 경향을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진달래꽃>,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섭대일 땅이 있었더면>을 선정하여 해석하고, 김소월 시의 가치와 한계에 대해 다루어보고자 한다.
김소월의 생애
김소월의 본명은 정식이며, 소월은 그의 필명인 동시에 아호이기도 하다. 김소월은 1902년 9월 17일 외가인 평북 의성군 왕인동에서 부친 김성도와 모친 장경숙의 사이에 장남으로 태어났다.
상속자로 태어난 김소월은 증조모를 위시한 11명의 식구가 모여 사는 대가족 제도의 가정환경에서 자랐다. 그러나 김소월은 유년시절을 쓸쓸하게 보내게 되었는데 그 원인은 부친의 정신질환 때문이었다. 나들이 길에 일인 목도꾼에게 구타당한 김소월의 부친은 정신질환을 앓게 되었고, 집안 살림은 광산업을 한 조부 김상기가 꾸려갔다. 조부는 소월이 서당교육을 받게 하였으며 1909년 남산보통학교 2학년에 편입시켜 본격적인 교육을 받도록 하였다. 7년 후인 1915년에 졸업한 소월은 그 해 4월에 오산학교 중학부에 입학하였다.
이 시기 그는 오산학교에서 조만식과 평생 문학의 스승이 될 김억을 만났다. 김억의 격려를 받아 1920년 동인지 『창조』5호에 <낭인의 봄>, <야의 우적>, <오과의 읍>, <그리워>와 같은 작품을 발표하며 등단하였다. 이후 <먼 후일>, <죽으면>, <허트러진 모래동으로> 등을 『학생계』제 1호(1920. 7)에 발표하여 주목을 끌기 시작하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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