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육신충의가(死六臣忠義歌)
- 최초 등록일
- 2019.06.07
- 최종 저작일
- 20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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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론
2. 사육신과 시대적 배경
2-1. 사육신이란?
2-2. 계유정난(癸酉靖難)
2-3. 단종의 복위 실패
3. 사육신충의가(死六臣忠義歌)
3-1. 성삼문(成三問)
3-2. 박팽년(朴彭年)
3-3. 이개(李塏)
3-4. 유성원(柳誠源)
3-5. 유응부(俞應孚)
4. 결론
본문내용
1. 서론
우리는 최근의 뉴스들에서 국회의원이 뇌물을 주고받거나 국회 회의와 같은 공적인 임무를 수행할 때에 걸맞지 않은 행동을 하여 논란이 되는 것을 심심하지 않게 볼 수 있다. 또한 국회에서 진행되는 회의를 생각했을 때 여당과 야당의 말싸움 장면이나 의자를 던지는 국회의원들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 또한 어렵지 않다.
그러나 과거, 유교의 영향으로 유난히 충의가 깊었던 조선시대의 주요 정치인들의 행적을 찾아보면 우리나라의 지금 모습은 당시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러운 모습이지 않을 수 없다. 그 중 단연 최고라 일컬어지는 사육신의 지조와 절개는 그들의 시조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육신의 시조를 통해 지금의 모습을 반성하고 그들의 의연하고도 당당한 지절의 자세를 본받고자 한다.
그러기에 앞서 사육신의 정의와 당시의 사회상과 시대적 배경 및 사건을 알아본 뒤 사육신 중 청구영언(青丘永言)》과 《가곡원류(歌曲源流)》에 실려 있는 것과 같이 하위지(河緯地)를 제외한 성삼문(成三問), 박팽년(朴彭年), 이개(李塏), 유성원(柳誠源), 유응부(俞應孚)를 인물별로 그의 생애와 대표적 작품, 그리고 작품에 대한 해석을 통해서 각각 무엇을 노래하고 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2. 사육신과 시대적 배경
2-1. 사육신이란?
사육신(死六臣)은 조선 세조 2년(1456) 세종과 문종의 고명을 받은 집현전 학자들을 비롯하여 수많은 신하들과 함께 세조를 제거하고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발각되어 처형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성삼문(成三問), 박팽년(朴彭年), 하위지(河緯地), 이개(李塏), 유성원(柳誠源), 유응부(兪應孚) 6명을 가리킨다.
2-2. 계유정난(癸酉靖難)
태종(太宗)의 강력한 통치 체제는 세종(世宗)이 위대한 업적을 남기는 기반이 되었고, 세종의 덕을 이어받은 문종(文宗)은 세종이 튼튼히 다져 놓은 기반 위에서 왕위를 물려받았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