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규원, 황지우의 시 읽고 비교하기(시 5편씩)
- 최초 등록일
- 2019.06.02
- 최종 저작일
- 20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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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황지우와 오규원 두 시인의 시를 읽고 비교하며 읽는 감상문입니다.
목차
1. 황지우 시 5편 (인용문있음)감상
2. 오규원 시 5편 (인용문있음)감상
본문내용
황지우
오 幻生을 꿈꾸며 새로 태어나고 싶은 물소리, 엿듣는 풀의 淚腺, 살아 있는 것은 살아 있는 동안의 이름을 부르며 살 뿐, 있는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사는 것이 사는 것이 아니로다 저 타오르는 불 속은 얼마나 고요할까 傷한 촛불을 들고 그대 이슬 속으로 들어가, 곤히, 잠들고 싶다.
(「草露와 같이」, 황지우《바깥에 대한 반가사유》,p15)
환생을 꿈꾸는 물소리는 엿듣는 풀의 눈물샘과도 같다. “살아있는 것은 살아있는 동안의 이름을 부르며 살 뿐”인 세계가 시인이 처한 현실이라면, 죽는 동안의 이름은 현재 살고 있는 우리는 모르는 이름일 것이며 그 이상의 의미를 짓고 있지는 않은 무의미한 세계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이후에“있는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사는 것이 사는 것”이 아니라 말하는 시인의 태도는 앞의 삶의 무의미에 대한 염세적인 태도보다는 삶의 치열한 고민에 가까워 보인다. 인간은 삶에 대해 끊임없는 의미망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모양과 같으며, 이는 세상과 연결 짓는 모순성을 반영하기도 한다. 시인은 이러한 현실을 통해 우리가 인간이라는 이름으로. 이름 붙여질 수 있는 세계. 인간이라는 공통감각에 대해 (황지우의 시집을 종합적으로 읽어볼 때)이야기하고자 하는 듯하다. 이는 강한 믿음으로 보여지기도 하며 다소 편의성에 기대있는 듯하지만 ‘인간’에 대한 기대치가 별로 없을지도 모르는 시인에게 적합한 윤리의식일 것이다. 이 믿음은 타오르는 불속의 고요함 속에 눕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상한 촛불을 들었을지언정 그대의 이슬 속으로 들어가길 택하는 일이다. 이러한 그가 ‘너(타인)’를 만날 때 어떤 모습으로 변모하며 시인의 고유한 의식 속에서 바라본 내면 속 풍경은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1
처음 본 모르는 풀꽃이여, 이름을 받고 싶겠구나
내 마음 어디에 자리하고 싶은가
이름 부르며 마음과 교미하는 기간,
나는 또 하품을 한다
참고 자료
황지우,《바깥에 대한 반가사유》_2010, 휴먼앤북스, 한국대표시인선 발간 위원회,
오규원,《오규원 시선》_2012,엮자 이현승, 지식을 만드는지식,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