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다 쇼인에 대한 레포트
- 최초 등록일
- 2019.05.24
- 최종 저작일
- 20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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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들어가며
2. 요시다 쇼인의 생애
3. 요시다 쇼인의 사상
4. 나가며
본문내용
요시다 쇼인은 죠슈번 하기에 살던 최하급무사 스기 유리노스케의 3남 4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스기 유리노스케의 동생 다이스케는 죠슈번의 공립학교인 명륜관에서 병학(兵學)을 가르쳤는데, 가업을 이을 후계가 없어 쇼인을 양자로 삼고 일본에서는 가업을 이어받는 것이 관습인데, 그 후계자가 자식이 아니어도 상관이 없었다.
병학사범(兵學師範)의 직책을 물려주기로 했다. 하지만 다이스케가 29세의 젊은 나이로 죽자, 쇼인은 불과 6살이라는 나이에 병학사범 직책을 물려받게 됐다. 이에 쇼인의 또 다른 작은 아버지였던 분노신이 쇼인의 후견인이 되어 쇼인을 길렀다. 죠슈번은 어린 쇼인이 공부하며 성장할 수 있도록 병학을 분노신 등의 다른 사범이 가르치도록 하였다.
11살이 된 쇼인은 야마가류 병학에서 교범으로 사용한 『무교전서(武敎全書)』를 야무지게 강의해 죠슈 번 관료들을 크게 놀라게 했다. 이 때 쇼인이 지내던 ‘마츠모토에서 천재가 나타났다.’는 말이 나올 만큼 사람들은 그의 재능에 감탄했다고 한다. 15살 때는 『손자병법』 등을 강의하여 다시 한 번 사람들을 놀라게 했고, 쇼인이 마음껏 재능을 펼칠 수 있게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한 죠슈 번주(모리 번주)는 쇼인의 후견인을 몇 명 더 지정했다. 성장한 쇼인은 나가누마류 병학, 야마가류 병학 면허를 발급 받아 병학에 대한 능력을 인정받았으며, 죠슈 번이 대대로 천황에게 충성한 죠슈 번의 역사를 배우면서 균형감을 가진 인재로 성장했다. 특히 역사학습 과정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은 뒤 일본을 평정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히데요시의 부하였던 모리 데루모토의 영지를 상당 부분 빼앗고, 죠슈 지역으로 쫒아낸 사실을 배웠다. 이것은 죠슈 번이 기본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에도 막부에 대한 반감과 훗날 에도막부 멸망 후 신정부의 주요 세력이 되는 것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아무튼 쇼인은 죠슈 번의 적극적인 지원 하에 죠슈 번의 미래를 짊어지는 인재로 성장했다. 그 결과 19세가 되던 해 병학사범으로 정식 임명될 수 있었다.
참고 자료
단행본
김세진, 『요시다쇼인, 시대를 반역하다』, 호밀밭, 2018.
정혜선, 『일본사 다이제스트100』, 가람기획, 2011.
논문
김영, 「일본의 보수 우경화와 요시다 쇼인」, 『대한일어일문학회 학술대회 발표논문 요지집』, 대한일어일문 학회,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