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 공주 공산성 답사 보고서(컬러사진 포함)
- 최초 등록일
- 2019.04.22
- 최종 저작일
- 2014.04
- 10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8,000원
* 본 문서(hwp)가 작성된 한글 프로그램 버전보다 낮은 한글 프로그램에서 열람할 경우 문서가 올바르게 표시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최신패치가 되어 있는 2010 이상 버전이나 한글뷰어에서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벚꽃이 흩날리던 3월 중순, 공산성으로 답사를 떠나게 되었다. 답사를 갈 때 마다 느끼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것이다. 답사(踏査)의 의미가 ‘밟고 보다’인 만큼 직접 공산성을 밟고 보며 웅진시대 백제 인들의 향취를 느끼기 위해 노력하며 이번 공산성 답사를 진행하였다.
백제는 장수왕의 남진정책으로 인해 문주왕 원년(475)에 한성에서 웅진(현 공주)로 천도한다. 공산성은 문주왕을 비롯해 삼근왕, 동성왕, 무령왕을 거쳐 성왕 16년(538)에 사비(부여)도 천도할 때까지 64년간 백제의 왕성이었다. 백제 시대에는 웅진성으로, 고려 시대에는 공주산성, 조선 시대 인조 이후에는 쌍수산성으로 불리었다. 금강에 접한 해발 110m의 산에 능선과 계곡을 둘러쌓은 포곡형 산성으로 축조되었는데, 백제시대에는 토성이었다가 조선시대 인조, 선조 이후에 석성으로 개축되었다. 이는 쌍수정을 설명할 때 조금 더 깊이 있게 다루겠다. 성의 길이는 총 2,660m이고, 동서남북 네 곳에서 문의 터가 확인되었다. 남문과 북문인 진남루와 공북루는 남아 있었고, 1993년 동문과 서문을 복원하여 각각 영동루와 금서루로 명명하였다. 2011년에는 연도가 새겨진(645) 백제시대 갑옷과 마갑이 출토되기도 하였다. 팸플릿에 따르면 약 한 시간 정도가 소요된다는데 걸음걸이가 얼마나 빨라야 이 큰 산성을 한 시간 안에 돌 수 있는지 의문이다. 이러한 점은 공산성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한 담당 부서의 의도적 실수가 아닐까 한다.
금강철교를 지나 공산성으로 들어가는 길은 서문을 통하는 길 하나뿐이다. 서문을 지나면 두 갈래 길이 나뉘는데 이 갈래 길 중에서 쌍수정으로 가는 길이 하나 있고 공산정으로 가는 길이 하나 있다. 대략 반년이 지난 지금도 붕괴된 성벽의 복원이 다 이루어지지 않아 붕괴가 가능할 수도 있다고 하여 공산정으로 가는 길은 통제되어 가볼 수 없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