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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포트] 김춘수 발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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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등록일
2019.04.10
최종 저작일
20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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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생애와 작품

2. 시의 변모
1) 존재와 언어의 관계
2) 서술적 이미지와 리듬을 통한 무의미시 준비단계
3) 무의미시
4) 자기 인식

3. 마치며

본문내용

김춘수는 서정주, 김수영과 함께 해방 이후 시에 큰 영향을 미친 시인으로 평가되고 있다. 김춘수는 언어와 대상 간의 관계를 고민하고 그 해답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시인이자 시 이론가였다. 그가 제시한 ‘무의미시’라는 개념은 우리 시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로 시문학사에 깊게 각인돼 있다.
그의 첫 시집 『구름과 장미』(행문사, 1948)의 서문에 유치환은 “우리 민족이 얼마나 의로운 민족이기에 이와 같은 시인을 낳게 했느냐”라는 등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김수영 시인은 “진정한 의미에서 무의미의 추구는 의미의 포기나 배제가 아니라, 의미의 유보나 은폐”라며 김춘수의 시를 공개적으로 비판하기도 하였다. 김춘수 시의 초기 경향은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영향을 받았으나, 1950년대에 들어서면 사실을 분명히 지시하는 산문 성격의 시를 써왔다. 그는 사물의 이면에 내재하는 본질을 파악하는 시를 써 '인식의 시인'으로도 일컬어진다.

1. 생애와 작품
김춘수의 본관은 광산이며, 1922년 11월 25일 김영팔, 허명하의 장남으로 경상남도 통영읍 서정 61번지(현 통영시 동호동)에서 태어났다. 1935년 통영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경성공립제일고등보통학교(경기공립중학교)에 입학하였다. 1939년 경기공립중학교를 자퇴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1940년 니혼대학[日本大學] 예술학과에 입학하였다. 1942년 일본 천황과 총독을 비판하다가 경찰에 붙잡혀 퇴학 조치를 당하고 한국으로 송치되었다. 1944년 명숙경과 결혼하였고, 1946~1948년 통영중학교 교사로 재직하였으며, 1949~1951년에는 마산중학교에서 재직하였다. 1964~1978년 경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1979~1981년 영남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1981년 제11대 전국구 국회의원 및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에 선출되었으며, 1986년 한국시인협회 회장에 선임되어 1988년까지 회장직을 수행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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