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의 독립운동가 관련 리포트
- 최초 등록일
- 2018.08.28
- 최종 저작일
- 20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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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론
2) 밀양의 독립운동가들
(1) 의열투쟁 계열
① 의열단
② 김원봉
③ 윤세주
④ 최수봉
(2) 학생독립운동 계열
① 학생독립운동
② 김금연
③ 김영복
④ 전병철
3) 결론
4) 참고문헌
본문내용
1) 서론
밀양지역은 밀양강과 낙동강에 의해 충적된 비옥한 토지 때문에 개항 이후 낙동강과 경부선을 통한 일본인들의 내륙 진출이 러일전쟁 이전부터 추진되었다. 더불어 대규모의 일본인 농촌이민도 추진되는 등 일본인 식민회사와 대지주의 토지 침탈이 이른 시기부터 가속화되었던 곳이었다. 특히 밀양군의 중심지역인 밀양면과 낙동강의 수운 중심지인 삼랑진은 경부선의 건설과 함께 일제시기 이전부터 일본인 및 일본인 대지주 의 토지침탈이 진행되고 있던 곳이었다.8) 더군다나 밀양면과 삼랑진 사 이의 상남면은 낙동강의 지류인 밀양강과 낙동강의 사이에 위치한 약 30 리의 충적토로 토지가 비옥하여 농업경에 적합한 지역이었다. 다만 두 강이 자주 범람하여 수해가 빈번히 발생했고 이 때문에 아직 개간하지 못한 땅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강 오른쪽 낮은 구릉을 중심으로 조선 인 마을이 존재했고 그 인근의 땅만 조선인들이 경작했다. 이와 같은 점을 일찍부터 조사하여 간파한 일본인들은 러일전쟁을 전후하여 본격적으로 이 지역에 진출하여 수리시설을 설치하고 토지를 개간하여 소유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일본인들은 이른 시기 밀양지역의 철도역을 중심으로 농촌지역에 진출했으며 뒤이어 점차 읍내지역까지 역을 확장하여 조선인과의 사이에서 갈등이 크게 고양되었다. 이로 말미암아 1919년 전국적으로 전개된 3·1운동을 비롯한 여러 독립운동이 밀양에서 일어났던 것이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배경 속에서 등장했던 밀양의 독립 운동가들에 대하여 다루어보고자 한다. 2) 밀양의 독립운동가들
(1) 의열투쟁 계열
① 의열단
의기가 장렬하다는 뜻의 ‘의열’이라는 말은 옛 문헌의 ‘춘추의열’에서 따 온 것으로 예부터 천추에 빛날 충의로 열렬하게 행동한 인물을 가리켜 의열 지사라고 하였다. 따라서 ‘의열’이란 생사를 가리지 않는 정신이 낳은 행동의 장렬함과 그 행동에 깃든 의로움의 가치를 존숭하여 기리는 뜻이 담긴 단어라 할 수 있다. 독립운동에서의 의열 투쟁은 일종의 무장투쟁을 뜻했고 이는 비교적 큰 규모의 군사적 활동이 아닌 개인적 또는 소규모 조직적인 차원에서 암살이나 파괴 등을 주로 하는 활동을 가리킨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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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트 밀양시청 ? http://www.miryang.go.kr/program/content/national_merit.php?&page=1
네이버 지식백과 학생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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