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김득신의 생애
1. 생애에 관한 기록
2. 호(號), 화풍, 직위에서 유추되는 성격
3. 가문(家門)
4. 교우관계
Ⅱ. 김득신의 화풍
1. 화풍의 변화과정
2. 김득신의 독자적 풍속화풍(風俗畵風)
Ⅲ. [노상알현도] 해설
1. 그림의 주제 및 기법
2. 다른 작품과의 비교
본문내용
Ⅰ. 김득신의 생애
1. 생애에 관한 기록
• 오세창(吳世昌)의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
“자(子)는 현보(賢輔), 호(號)는 긍재(兢齋), 본관은 개성(開城)이다. 화원인 복헌(復軒) 김응환(金應煥)의 종자(從子)이며, 한종일(韓宗一)의 생질(甥姪)이다. 영조 30년 갑술년(甲戌年)에 태어나서 69세에 졸(卒)하였던 화원이며, 관(官)은 초도첨사(椒島僉使)를 지냈다. 그림에 능하고 특히 인물을 잘 그렸다.”
• 유재건(劉在建)의 『이향견문록(里鄕見聞錄)』
“긍재(兢齋) 김득신(金得臣)의 자(子)는 현보(賢輔)이며, 복헌(復軒)의 조카이다. 일찍부터 화예를 업으로 하였고, 인물·영모(翎毛) 그림에 능하였다. 정조가 그의 부채 그림을 보고 말하기를, ‘김홍도와 더불어 백중(伯仲)할만 하다’고 하였다. 그때 감상하는 이들이 모두 말하기를, ‘오고(吳顧)의 경지에 바로 들어갔고, 변장(邊張)의 재주를 넘어섰다.’고 하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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