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과체제의 붕괴와 농장의 형성 고찰 리포트
- 최초 등록일
- 2016.12.09
- 최종 저작일
- 20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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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전시과체제의 붕괴
1) 전시과체제의 제도적 모순
2) 전시과체제의 붕괴
2. 농장의 형성과 그 요인
1) 농장의 성립요인
3. 농장의 구조와 성격
Ⅲ. 결론
Ⅳ.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서론
고려시대 무신정권기에는 많은 사회적 변화가 발생하였다. 고려의 토지제도의 기본이었던 전시과체제가 붕괴되기 시작하였고, 권세가의 불법 및 편법을 통한 토지의 탈점이 지속화되어 농민들이 토지를 빼앗기고 삶의 터전을 상실하게 되는 반면, 권세가들은 한 마을 규모의 대토지를 소유하여 소작인을 통해 경작하여 부를 축적하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원간섭기 까지 지속되게 되며 동시에 민중들의 불만에 의한 투쟁으로 이어졌다. 그렇다면 전시과체제가 붕괴하게 된 원인과 이후 형성된 권세가들의 농장의 형성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자.
Ⅱ. 본론
1. 전시과체제의 붕괴
1) 전시과체체의 제도적 모순
양반관료에게 지급한 분급수조지가 항례적으로 부족하였다는 사실이었으며, 「신몰하면 모두 납공토록」하는 원칙에도 사전과 세전의 가산화가 이루어졌고, 공음전지나 사전같이 실제적으로는 사유지 같은 토지가 계속 지급되어 그 같은 현상이 성행되었다.
이런 상황은 지배계층간의 상호이해문제와 관련으로 대립이 유발되었지만 왕조의 지배질서가 안정되어있는 동안은 겉으로 나타나지 않았다.
2) 전시과 체제의 붕괴
그러한 안정과 균형은 이자겸의 집권과 이자겸의 난(1126)을 전후하여 깨졌고, 이러한 혼란 속에서 권세가들의 토지탈점이 진행되어 전시과체제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이 사회전반에 걸쳐 진행되어 전시과제도가 결정적으로 타격을 입게 되는 것은 무신정권(1170)이후부터다. 무신정권(1170)이후부터는 권세가뿐만이 아닌 토호와 승려들도 탈점자·겸병자로 나섰으며, 그 대상은 민전은 물론 양반전, 군인전 등 공·사전 모두에 미쳤다. 이 같은 모습은 아래의 자료를 통해 볼 수 있다.
명종 18년 3월에 제制를 내리기를, 무릇 주현에는 각기 경외京外 양반·군인의 가전·영업전이 있는데, 이에 간할한 이민이 권요에 의탁코자 하여 거짓으로 한지라 칭하고는 그 집(권요가) 앞으로 기록을 올리고, 권세자도 또한 아가전이라 칭하며 공첩을 요구·취득하고는 ......<중 략>
참고 자료
송호정 외, 『아틀라스 한국사』, 사계절, 2004.
박용운, 『고려시대사』, 일지사,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