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곽으로 떠나는 사연, 남한산성
- 최초 등록일
- 2015.03.28
- 최종 저작일
- 20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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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병자호란의 아픔이 어린 남한산성에 대한 재미있고 유익한 스토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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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서울에서 가까운 경기도 광주시에 서울의 주산인 북한산(北漢山)과 대칭되는 높이 496m의 남한산(南漢山)이 있다. 남한산은 역사상 중요 요충지로 알려진 곳인데, 유명한 남한산성이 산 능선을 따라 이어져 있다. 17세기 병자호란 당시 산성에서 조선 16대 임금 인조가 항전을 벌이다 청나라에게 항복한 치욕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남한산성이 워낙 유명하다보니 사람들은 남한산이란 산 이름보단 남한산성으로 이 일대를 부르는 게 오히려 자연스러워졌다. 그 영향 때문일까? 수도권에 위치하고 숲이 울창해서 사람들의 발길이 잦은 남한산에는 일반 산행보다는 산성을 탐방하는 기행이 훨씬 더 많다. 과거 성곽 복원공사를 하면서 성을 중심으로 등산 코스를 아주 잘 정비했기 때문이다.
남한산성(南漢山城)의 역사는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시대 남한산지역은 한강과 더불어 삼국의 패권을 좌우하는 주요 거점이었다. 남한산은 백제가 하남 위례성에 도읍을 정한 이후 백제에게 있어서 성스러운 대상이자 진산으로 여겼으며, 백제의 시조인 온조대왕을 모신 사당인 숭열전을 두었다. 이처럼 중요한 요충지에 위치한 남한산성은 통일신라시대 당나라의 침략에 대비해 문무왕 때(672년)에 처음 토성을 쌓으면서 만들어졌다.
<중 략>
자하문(至和門)이란 이름을 가진 남문(南門)은 4대 성문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이곳 남문을 거쳐 서문, 북문, 그리고 동문으로 연결되는 4대 성문은 밑에 홍예문을 두고 위에는 문루를 세웠다. 남문에서 서문 쪽으로 성곽을 따라 오르면 팔각의 정자 영춘정을 지나 서쪽 주봉인 청량산 정상부에 이르러 수려한 이층누각의 건축물 수어장대(守禦將臺)와 조우하게 된다. 수어장대는 남한산성의 지휘 및 관측을 위한 군사적 목적에서 지어진 사령부로 선조 때에 산성 축성 당시 동남북의 3개 장대와 함께 만들어져 당시에는 ‘서장대’로 불렸다. 세월이 흐르면서 동남북의 장대 건물은 모두 없어졌고, 현재까지 유일하게 남아 있는 수어장대는 화려하고 웅장한 모습을 자랑하며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어 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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