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의 길, 특사의 길, 이준 루트
- 최초 등록일
- 2014.12.11
- 최종 저작일
- 20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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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2011년 4월 18일, 서초동 대검찰청에서는 이준 열사와 관련된 학술 심포지엄이 열렸다. 헤이그 특사로 널리 잘 알려져 있지만, 사실 이준 열사는 대한제국의 제 1세대 검사였다. 바로 이 이준 열사께서 가신 ‘이준 루트’를 따라갈 두 검사님이 ‘이두봉’검사님과 ‘이환우’검사님이다. 이두봉 검사님은 대구지방검찰청 상주지청장이시며, 항렬 상으로 하면 이준 열사님이 증조할아버지 되신다. 이환우 검사님은 초임검사님으로 서울 중앙 지방검찰청에서 근무하고 계신다.
이제 이준 열사께서 헤이그 특사로서 떠나신 ‘이준 루트’를 되짚어가는 두 검사의 여정이 시작된다.
그 예전 이준 열사께서는 부산에서 출발하셨으나, 지금은 부산에서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배편이 없기 때문에 동해항 여객 터미널을 통해서 출발한다. 배에는 두 검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외국인이었다. 그들에게 두 검사는 이준 열사의 루트를 그대로 따라가는 여정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영상에서는 헤이그 특사 3인 중 하나로 깊숙이 각인되어 있는 이준 열사가 검사였다는 사실에 집중한다. 1895년도에 새로운 재판제도가 생기면서 검사제도와 소송제도도 함께 들어왔는데, 이것들을 운용하는 주체로서 판사와 검사를 양성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법관양성소를 설치하였고, 이 법관양성소의 제1회 입학생이자 제1회 졸업생이 바로 이준 열사이다. 최초의 근대적 법학교육을 받은 분이신 것이다.
이준 열사께서는 1869년 한성재판소 검사보에 임명되고 헤이그로 떠나기 1년 전인 1906년에 평리원 검사에 임명된다. 즉, 이준 열사께서는 근대적 법률 지식에 해박했다. 이러한 점이 고종황제께서 이준 열사를 당시 을사늑약 이후 만국평화회의에 대한 마지막 희망으로 선택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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