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 사태에 대한 원인과 그에 대한 나에 생각
- 최초 등록일
- 2014.11.07
- 최종 저작일
- 2014.10
- 4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500원
소개글
10.26 사태가 일어난 원인에 대해 분석하고 그에대한 주관적 생각을 쓴 자료입니다.
흔한 답변을 원치 않는 분께 도움이 되실겁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약 18년간 유지해온 박정희 대통령의 독재정권은 당시 김재규가 궁정동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함으로써 막을 내리게 된다. 10.26 사태는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정권이 몰락한 직접적인 계기가 되는 중요한 사건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단지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에 의해 죽임을 당한 사건’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이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며 내 생각을 적어보려고 한다.
먼저 10.26 사태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알 필요가 있다. 유신 체제 말, 박정희 대통령의 독재 체제는 정당성을 잃고 YH사건, 부마사태, 김영삼 신민당총재 제명사건 등으로 인한 국내정세의 변화 및 위기에 있었다. 이에 박정희 대통령은 반대세력들을 무력을 사용해서 강경한 태도로 억압하려 했지만 당시 온건파였던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는 그런 박정희 대통령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또한 당시 경호실장이었던 차지철이 박정희 대통령의 총애를 받으며 박정희 대통령을 등에 업고 월권을 비일비재하게 저질렀으며 김재규와 비서실장이었던 김계원과 종종 마찰을 빚었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10월 16일 ‘부마 민주항쟁’이 발생하고, 계엄령이 선포된다. 김재규는 사태파악을 위해 직접 부산에 내려가는데, 그는 부마항쟁이 단순한 항쟁이 아니라 국민들이 정부에 대한 감정이 극에 달해 폭발한 것이며 사태가 심각하다고 느껴 이에 대해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강경노선을 완화시키려 했지만 오히려 질책만 듣고 갈등은 심화된다. 그리고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는 직속부하인 박선호, 박흥주 등과 밤에 궁정동 만찬회 석상에서 대통령 살해사건을 결심한다. 김재규는 먼저 의장과정 박선호에게 암살 준비 지시를 내렸다. 박선호는 경비원 관리책임자 이기주를 불러 무장하게 하고, 운전사인 유성옥을 불러 대기시켰다. 김재규와 다섯 명의 부하들, 단 여섯 명으로 궁정동에서 10.26 사건을 일으킨 것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