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촌마을의 역사성
- 최초 등록일
- 2014.06.04
- 최종 저작일
- 20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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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서촌마을의 의미
Ⅱ.서촌마을의 시대별 건축물
1.조선시대
-영추문
-자수궁터
2.일제시대
-이상
-윤동주 하숙집터
-이중섭 집터
-이완용 집터
-박노수 가옥
-순정효황후 생가
3.근대
-대오서점
-서울교회
-통인시장
-청와대
Ⅲ.서촌마을의 갖는 현대적 의미
본문내용
Ⅰ.서촌마을_‘문화와 예술, 역사의 마을’
서촌은 경복궁 서쪽에 있는 마을을 일컫는 별칭으로 인왕산 동쪽과 경복궁 서쪽 사이, 청운효자동과 사직동 일대를 뜻한다. 이곳은 서울 시내에선 보기 드물게 조선시대, 일제강점기, 해방직후 ,산업화 시기, 최근에 이르기까지 모든 시간대가 공존하는 곳이다. 세종대왕을 비롯해 백사 이항복, 송강 정철, 겸재 정선, 추사 김정희, 안평대군 등 뛰어난 문인과 화가들이 나거나 살았던 이 지역은 인왕산 자락을 벗삼아 활동하면서 조선시대의 예술과 문화를 꽃피웠던 문화의 고장이다. 그러한 흐름은 근대까지도 이어져 시인 이상, 윤동주, 해공 신익희, 화가 이중섭, 박노수, 문인 이광수, 노천명 등 수많은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집터 역시 이곳에 있다.
골목의 샛길을 빠져나와 대로변에서 마주하게 되는 우리은행 건물은 그러한 시대의 혼잡성을 잘 대변해준다. 일제 강점기의 건축양식이 잘 묻어난 살굿빛 건물은 정체모를 빛깔을 띠며 신고전주의적 냄새를 풍기고 있다.
<중 략>
조선시대에 들어와 1426년 경복궁을 창건하면서 궁궐후원으로 삼아 이 곳에 연무장, 융무당,경농재 및 과거장이 마련되었으며 왕의친경지로도 사용되었다. 그 후 일제의 조선총 독부가 경복궁 안에 청사를 신축하면서 1927년 오운각 외의 모든 건물과 시설을 철거하고 총독관저를 이 곳에 지었다. 청와대 본관은 바로 이 때 건축한 것이다.1945년8·15광복과 더불어 미군정이 시작되자 이 곳은 그대로 군정장관의 관저로 사용되었으며, 1948년 8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어 대통령 관저로 사용되면서 ‘경무대’라고 불렀다. 그 후 1960년 4월 4·19혁명 후 민주당정권이 들어서면서 대통령 윤보선이 경무대의 주인이 되자 곧 ‘청와대’로 개칭하였고, 1990년 프레스센터인 춘추관과 대통령 관저가 신축되었다. 1993년 8월 대통령 김영삼의 지시로 일제강점기의 조선총독이 기거하였던 구관은 철거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