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즈너스 영화감상문
- 최초 등록일
- 2014.04.04
- 최종 저작일
- 2014.04
- 7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500원
목차
1.소개
2.줄거리
3.탁월하고 만만치 않은 완성도
(1)아름다운 불친절
(2)선악의 혼탁
4.프리즈너스(죄인들, 수감자들, 포로들)
(1)수감자
(2)죄인
본문내용
(1)수감자
일단 가장 크게 와 닿는 ‘수감자’라는 단어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프리즈너스라는 단어를 하필이면 수감자라고 번역할 필연성은 이 영화에서 숱하게 찾아볼 수 있다. 실제로 감금을 당하는 사람들이 그렇고, 영화에서 중요한 단서로 등장하는 ‘미로’가 상징하는 바가 또 그러하다.
이 영화에서 수감자라고 한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역시 도버에게 감금을 당하는 ‘알렉스’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도버가 알렉스에게 행하는 고문의 잔인성과 창의성에 감탄과 경악을 금치 못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알렉스는 아이들을 납치한 용의자로 의심받고 그렇게 고문을 당하고 감금을 당했지만 수감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또 있다.
바로 유괴당한 아이들이다. 이 영화의 발단이 되는 사건은 ‘유괴’다. 아이들이 유괴당하면서 영화는 추진력을 얻기 시작한다. 아이들을 찾아야 한다는 목적의식을 영화와 관객이 공유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이 영화의 중심이 되는 사건, 아이들이 경험한 사건은 납치 혹은 유괴가 아니라 ‘감금’이다. 생각해보면 이 영화에서는 아이들이 납치되는 장면이 관객들에게 보여지 않는다. 아이들은 납치된 게 확실할까? 물론 영화를 끝까지 감상한 관객이라면 납치유괴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사라진 직후의 영화 속의 인물이었다면 아이들은 그저 사라진 것일 뿐이다. 그 누구도 아이들이 유괴당하는 장면을 보지 못했으니 그 아이들이 납치된 것인지 가출을 할 것인지 알 수 없다.
<중 략>
알렉스를 고문하는 일이 비인간적인 일로서 인간성의 정식이 어긋나는 것이라 한다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는 상황에서 유일한 희망인 알렉스를 고문하지 않는다는 것 역시 인간으로서 존중받아야 할 그의 딸들에 대한 의무를 방기하는 일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반문이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다시 말해서 이런 상황에서 무작정 목적론을 비판하고 의무론을 채택하게 된다면 의무론적 윤리학이 가지고 있는 치명적인 단점, 즉 상충하는 의무 사이의 갈등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알 수 없게 되는 미로에 빠지게 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