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즈네프 정권
- 최초 등록일
- 2014.04.03
- 최종 저작일
- 20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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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브레즈네프의 등장
2. 집단지도체제
3. 레오니트 브레즈네프정권의 정치적 목표
4. 브레즈네프정권의 외교정책
5. 데탕트의 약화
6. 결론
본문내용
브레즈네프는 1931년 공산당에 입당 했고 35년에 도네프로젠스키 야금대학을 나왔으며,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였다.
1946년에 자포노레주 당 제1서기가 된 이후 여러 당직을 거쳐 1956-60년에 당 중앙 위원회 서기로 지냈고, 60년 최고회의 간부회의장을 맡았다.
그 후 흐루시쵸프가 그의 내정실패로 당 중앙 위원회에서 물러나자, 그 뒤를 이어 당 서기직에 올랐다.
2. 집단지도체제
흐루시초프 실각 초기 5년간 최고 권력은 몇 명의 고위층에게 나뉘어져 있었다.
새 지도층도 당 제1서기가 개인적 독재권을 형성하지 못하도록 노력했다.
브레즈네프의 선전 미디어 지배를 허용하지 않았다.
그 당시 브레즈네프, 코시긴, 포드고르니, 수슬로프의 네 명으로 비공식적 집행위원회를 구성하여, 이들이 집단으로서 하나의 지도자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브레즈네프의 권력은 제한되어 있었고, 이 기간의 코시긴의 역할은 강력했다.
이 때의 권력 구조의 변화로는 1965년 초부터 포드고르니 측근 거세가 이었다.
포드고르니는 원래 흐루시쵸프와 가까웠으므로 브레즈네프에게는 불안 요인이었다.
또 하나의 중요한 개편은 셸레핀의 서기국 탈락이었다.
브레즈네프의 강력한 경쟁자로 간주되던 그는 1967년 노조책임자로 전출되었다.
동시에 브레즈네프는 그와 가까운 사람들인 유스티노프, 쿨라코프, 카피토노프, 키릴렝코, 솔로멘체프, 카투셰프 등을 서기국으로 끌어들였다.
이 과정으로 인해 그는 1966년 제23차 당 대회에서 제1서기라는 칭호 대신 서기장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이후 점차 실질적인 1인 지배 체제를 구축하고 안정된 권력을 구사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