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정치학] 소련의 해체 원인과 배경
- 최초 등록일
- 2003.05.08
- 최종 저작일
- 20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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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서론
2.소련의 해체원인
-뻬레스트로이카의 실패
-8월 쿠데타의 실패 및 파벌대립
-소수민족들의 독립요구
-국제적 여건 : 외부의 압박설
3.결론
본문내용
1985년 3월 공산당 서기장으로 취임한 고르바초프는 과거 스탈린의 슈퍼공업화 과정에서 연유된 경직된 관료주의와 비효율성 그리고 브레즈네프 시대를 겪으며 나타난 현상유지와 국가와 대중들간의 묵시적인 사회계약 등이 초래한 도덕적 해이와 적당주의 등 당시 소련이 가지고 있던 문제점을 직시하고 있었고, 이를 뻬레스트로이카로 치유하려고 하였다. 즉, 뻬레스트로이카는 사회주의의 능률성과 민주적 개혁을 위한 시도였으며, 이것은 새로운 정치적-경제적 질서의 구축과 신사고에 입각한 소련의 재건이었다.
뻬레스트로이카를 통하여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사고가 체제전반에 걸쳐 확산은 되었지만, 이는 1990년 3월부터 혼란기를 겪으면서 그 의미를 상실하고 말았다. 글라스노스찌를 통한 정보공개 정책으로 기존의 비효율성, 저생산성, 관료들의 정책상 실수들을 드러나게 함으로써 부정적인 요소들을 개선할 수 있게 하였고, 1990년 3월 14일 소연방 헌법 제 6조 항의 폐지로 공산당의 일당독재가 사라지게 되는 등 획기적인 개혁이었으나, 이러한 일련의 자유화 및 민주화 작업은 기득권 세력이던 구 공산당원과 정부관료들의 큰 저항에 부딪혔고, 급진 개혁파이던 옐친 또한 뻬레스트로이카의 방법과 노선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하는 등 뻬레스트로이카는 고착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또한 1990년 9월 고르바초프의 '500일 경제개혁' 정책은 지지부진하여 내부의 혼란만 가중시켰고, 이후의 국민투표에서의 반 고르바초프적인 성격의 질문에서의 상당수의 유권자의 찬성은 고르바초프의 몰락을 초래했고, 상대적으로 옐친의 급부상과 1991년 6월의 옐친의 러시아 공화국 대통령 당선은 소련을 해체의 길로 빠르게 접어드는 계기가 되었다.
참고 자료
소연방 해체의 외적요인 : 미국과 중국의 대소정책 김덕중
강의필기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