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에 관한 고찰 리포트
- 최초 등록일
- 2013.10.28
- 최종 저작일
- 20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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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세종대왕에 관한 고찰 리포트 입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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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파랑새에서 밥을 먹고 만원을 꺼내 계산을 하였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만원에 있는 세종대왕은 어떤 사람이 길래 우리나라 지폐에 있는 걸까?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한글을 포함하여 이 지역의 이름(세종 특별자치시)이고 여러 분야에 영향을 끼친 세종에 대해 알아보고 싶었다.
세종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책을 빌리기로 하였다. 하지만 도서관 공사로 인하여 책을 빌릴 수 없었다. 그래서 각자 집 근처의 도서관에서 책을 찾아보기로 하였다. 교수님께서 추천해주신 책들 중 몇 권은 집 근처 도서관에서 구하기 힘든 책들이었다. 결국 몇 권만 빌리고 다른 책들을 참고하여 어렵게 자료를 구하여 조사하였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했듯이 세종은 어린 시절부터 남달랐다. 충녕대군은 1397년 4월 10일 태종 이방원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충녕대군은 본래 세자가 아니였다. 첫째 형인 양녕대군이 본래 세자로 책봉되어 있었다. 하지만 양녕대군은 왕이 되는 것보다는 다른 것에 더 관심이 많았다. 양녕대군은 학문에 관심이 적었다.
<중 략>
세종은 언어학에도 뛰어났다. 1446년 훈민정음을 반포하였다. 이 당시 한문이나 이두를 사용했기 때문에 양반들이 아니면 배우기 힘들었다. 일반 백성은 대부분 까막눈이어서 불편함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당시 변란이 일어나거나 중요한 정책을 발표할 때, 길거리에 방을 붙여 알렸다. 그러나 글을 모르는 백성들이 그 내용을 전해 듣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전쟁이 일어나 급히 군사들을 소집하면, 전쟁이 다 끝나서야 군사들이 모이는 꼴이었다. 금주령이 내렸는데도, 방이 나붙은 저잣거리를 술에 취해 멋모르고 휘젓고 다니다, 호되게 곤욕을 치르는 백성들도 많았다. 세종은 할 말이 있어도 그 뜻을 펴지 못하던 불쌍한 백성들을 가르치고 깨우쳐주고 싶었다. 세종은 집현전 학자들에게조차 새 글자 개발을 비밀리에 붙였다. 1443년 드디어 훈민정음이 완성되었다. 당시 양반들의 반대가 빗발쳤다. 한문을 자유자재로 쓰는 양반들은 불편할 게 없었다.
참고 자료
박성규 지음, 『한권으로 읽는 세종대왕실록』, 웅진 지식하우스, 2008
박영규 지음,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웅진 지식하우스, 2004
문정민 지음, 『아이세움 역사 인물 세종』, 아이세움, 2009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엮음, 『세종시대의 문화』, 태학사,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