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화]중국의 화장실 문화
- 최초 등록일
- 2003.02.25
- 최종 저작일
- 20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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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거. 중국문화의 이해 시간에 리폿으로 내세요*^^*
목차
중국 화장실의 역사
중국의 변기
중국 궁중의 변기
돼지 변소
수도장으로 사용된 변소
민가의 변기
양자의 해골변기
인분 양어장과 메탄가스 변소
수도장으로 사용된 변소
반상회를 하는 공동변소
화장실 전쟁
본문내용
중국의 변기
주나라(周, BC 1027∼771) 시대에는 위유(威宥)라 칭한 변기가 있었다. 위(威)는 호자와 같은 변기를 뜻하는 자이고, 유(宥)는 구멍을 팠다는 의미로서 구멍이 파진 모양의 변기를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나라(漢, BC 202∼AD 8)의 무제(武帝)는 옥으로 된 변기를 사용했으며 일이 끝나면 시종(侍從)이 뒷처리를 하였다고 한다. 무제는 자신의 변기를 두는 곳을 헌중(軒中)이라 하였다. 이때 헌(軒)은 나중의 칙(厠)에 해당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부제 때 흉노(匈奴)의 사신(使臣)이 와서 고하기를 "흉노가 민(民)을 쳐서 왕의 머리를 음기(飮器)로 사용했다."고 했다. 이 음기를 두고 술잔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지만 호자 즉, 소변기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사람이 마시는 것이면 주배(酒盃)나 기타 다른 말로 표기했을 터이니 소변기의 뜻이었을 가능성이 많다. 결국 사신의 말은 적국 왕의 해골을 요강으로 사용했다는 뜻이 된다. 옛날 중국 사람들은 또한 규방(閨房)마다 변기를 두고 이 그릇을 청유(淸鍮)라고 불렀다. 삼국 위나라(魏, BC 220∼265) 시대에는 나무를 파서 변기를 만들었는데 이것은 나중에 현대 중국 가정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변기인 마통(馬桶)의 시초가 되었다. 이 변기는 낮에 사람들 눈에 잘 뜨이지 않는 곳에 보관되었다가 밤에는 침상 옆에서 사용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