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임시정부 건국강령, 의열투쟁, 대한민국임시정부 의열단체, 대한민국임시정부 국제연맹, 대한민국임시정부 홍보활동,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정개조운동,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의정원회의
- 최초 등록일
- 2013.08.06
- 최종 저작일
- 20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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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건국강령
Ⅲ.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의열투쟁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의열단체
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국제연맹
Ⅵ.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홍보활동
Ⅶ.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임정개조운동
Ⅷ.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임시의정원회의
Ⅸ. 결론
본문내용
남한 민족주의자들이 남북회담과 통일운동을 추진한 배경으로 또 하나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좌우․남북 합작의 경험이다. 먼저 1948년 2월 16일 김구․김규식이 남북회담을 제의한 「2월서신」에는 해방직전 임시정부의 좌우합작 시도가 상당히 자세하게 언급되어 있다.
一九四四年 十月 十六日 延安서 주신 惠札(a)을 拜讀한 以後 未久에 仁兄은 鴨綠을 건느고 弟는 黃海를 건너서 各各 그립든 故國을 차저오게 되었나이다(b). 그때에 있어서야 누가 한 나라 한 울 밑에서 三 四年의 긴 歲月을 經過하면서도 서로 對面하지 못할 것을 뜻하였으맀가. 아아 이것이 우리에게는 解放이라 함니다…………
仁兄이여 이것을 엇지하면 좋겟슴니가. 弟는 가슴이 답답하고 仁兄이 보고 싶은 때마다 때묻은 보따리를 해치고 일즉이 重慶에서 받었든 惠札(a)을 再三 읽고 있읍니다. 그 中에는 나에게 보냈다는 이러한 電文(c)도 記錄되어 있읍니다. 「今年三月先生給學武君的貴函 今十月初才收到(d) 我們今日一切以民族利益爲基準 不應有些毫成見, 我們對先生來延一次的意向無任歡迎(e)」. 또 나와 각 團體로 보냈다는 이러한 電文(f)도 記錄되여 있읍니다. 「我們不問 地域南北 派別異同, 誠心團結, 實事連絡, 如能促進會師鴨綠之實現, 諸位若能同意, 淵可以從中斡旋(g)」. 또 이러한 것이 記錄되여 있읍니다. 「先生今次信中 ‘連絡과 統一을 爲하야 老身이 一次 赴延하면 中韓 兩方面이 歡迎할 可望이 있겠는지?(h)’여긔 對하여 우리가 誠心으로 歡迎할 뿐 아니라, 中方面에서도 勿論 歡迎합니다.(i)」
이에 의하면, 1944년 3월 중경 임시정부의 김구는 김학무를 통해서 연안 독립동맹의 김두봉에게 ‘連絡과 統一’을 위해 자신이 연안을 방문할 의사를 피력한 편지를 보냈다(d, h). 10월초(d) 김구의 편지를 받은 김두봉은, 그 달 16일 연안측이 민족적 입장에서 사소한 의견을 버리고 김구의 연안행을 환영한다는 답신(a)과 전문(c, e)을 보냈다. 또한 김두봉은 각 단체에도 전문(f)을 보내 “지역과 파벌을 묻지 않고 각 단체가 압록강에서 대회동하는 것을 주선할 용의가 있다(g)”는 의지를 피력하였다.
참고 자료
고정휴, 김주용 외 3명,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현대사적 성찰, 나남, 2010
김지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군사투쟁, 대한민국순국선열유족회, 2007
김지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외교적 노력과 공헌, 대한민국순국선열유족회, 2007
김지암, 대한민국임시정부 체제의 변화와 의의, 대한민국순국선열유족회, 2006
대한민국순국선열유족회 편집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역사적 위상, 대한민국순국선열유족회, 2006
이현희,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의 정통성과 의의, 대한민국순국선열유족회,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