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과 조약체제와 조계지의 형성
- 최초 등록일
- 2013.07.10
- 최종 저작일
- 2012.10
- 8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500원
목차
Ⅰ.머리말
Ⅱ.조약체제와 조계지의 형성
1) 임오군란과 청국조계
2) 갑신정변과 일본조계
3) 구미와의 통상조약과 각국조계
Ⅲ.조계지 사회기반 구축
Ⅳ.조계지 안에서 일어난 갈등
Ⅴ.맺음말
Ⅵ.참고문헌
본문내용
1883년 인천 제물포(濟物浦)가 개항하고 일본의 일본전관조계를 시작으로 1884년 중국 청국전관조계, 서양 열강들의 각국공동조계가 설치된 후 제물포에서 일본, 청나라, 서양열강들의 조선차지를 위한 싸움이 시작되었다.
또한 인천은 다른 개항장과는 달리 모든 외국인이 출입하는 관문 이였으며, 일본과 청국의 각축장임 동시에 외국무역의 중심지였고, 또한 서구 문물이 도입되는 창구였기 때문에 모든 외교사절과 상인, 선교사, 여행자들이 인천을 통하여 들어왔기 때문에 조선은 인천의 조계를 중심으로 외세의 영향 받았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인천지역사의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인 서구열강들의 조약체제와 조계지의 형성을 큰 사건들 중심으로 기술해 조계지에서의 열강들의 세력 변화와 사회 형성을 알아보고, 그 조계지 안에 일어난 갈등에 대해서 서술하고자한다.
< 중 략 >
Ⅳ. 조계지 안에서 일어난 갈등
조선과의 통상 등, 본국과의 원활한 교류를 통해 조선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다는 목적과 재물을 모으려는 목적을 가지고 거주하기 시작한다. 특히 일본과 청국의 거류민들은 대체로 상인들이 많았다. 조계지의 외국인들은 대체로 동일한 목적을 갖고 조선에 거주하기 시작하였다.
한편 그들이 조선에서 활동을 전개하면서 조계지 내에서 거류민간 혹은 조선인들과의 갈등 혹은 대립이 하나씩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결국엔 각국 조계지에는 각각 자국민의 권익 보호와 이익를 얻기 위하여 경쟁, 음모, 동맹, 복수 등 갖가지 무질서한 현상이 나타났으며, 결국 조계지의 확충을 둘러싼 대립과 소유권 분쟁, 그리고 상업 활동의 과정에서 청·일상의 대립 및 외국상인들과 조선 상인들의 대립으로 이어져갔다.
일본과 청국은 개항초기부터 조선에서의 상권을 장악하기 위한 이른바 상권대립을 하기 시작하였다. 강화도조약에 따른 강제개항으로 한동안 일본이 독점하고 있던 조선에서의 대외무역은 1883년과 1884년에 잇따라 인천에서 일본과 청국의 전관조계가 설치됨에 따라, 이후 1894년까지 대조선 무역을 둘러싸고 치열한 경쟁이 전개되었다.
참고 자료
이규수, 개항장인천 (1883~1910)
仁川府, 『仁川府史』(仁川, 1933)
민윤, 租界地 仁川 租界地 社會의 硏九 (조계지 내 갈등과 범죄의 양상을 중심으로)
박광성, 「인천항의 租界에 대하여」, 기전문화연구(20집, 인천교육대학 기전문화연구소, 1991)
이희환, 이방인의 눈에 비친 제물포 (인천문화재단, 2007)
이희환, 仁川 開港場의 歷史文化地理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