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려 박사 일대기
- 최초 등록일
- 2013.05.28
- 최종 저작일
- 20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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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장기려 박사는 일제 강점기였던 1911년 평안북도 용천에서 한학자인 아버지 장운섭과 어머니 최윤경 사이에서 맏아들로 출생하였으며 송도고보와 1932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의 전신인 경성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나고야대학에서 의학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여동생의 죽음을 보면서 의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경성의전을 졸업해 의사가 되고 평양병원에서 일하게 된다.
우리나라 최초로 간암 수술을 성공으로 이끌어 외과의사로서 명성이 자자했던 그는 1950년에 우연하게 둘째 아들만 데리고 월남하게 된다. 이것이 가족과의 마지막 이별이 될 줄을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이렇게 장기려 박사는 6.25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북한에 가족을 남겨두고 온 이산가족이 되었다. 그 후 40여 년 간 그는 북한에 두고 온 부인과 5남매를 그리며 홀로 살면서 일생을 아픈 이들을 위해 봉사했다. 자기 집 한 칸 없이 병원 옥상의 가건물에서 살면서 환자가 찾아오면 치료비를 따지지 않고 치료부터 해주던 참된 의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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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큼 그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고 자신보다 없는 이들 편에서 진정한 의술을 행한 성자였다. 그런데 그의 기다림은 헛되지 않은 것인지 장기려는 1988년 북한에 있는 그의 가족들이 모두 잘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한국 전쟁 때 열일곱 어린 나이에 인민군으로 징집되어 간 큰아들 택용은 약학 박사가 되어 국제회의에 가끔씩 참석한다는 소식이었고, 큰 딸 신용은 식품 공학사, 성용은 핵물리학 박사, 인용은 이론 물리학 박사, 진용은 교사로 일한다고 하였다. 나중에 미국에 살고 있는 조카딸 장혜원이 여기저기 알아본 바에 따르면 그의 팔십이 넘은 아내가 아직도 건강하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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