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만의 여인의 사랑과 생애 2번곡 에 대하여
- 최초 등록일
- 2013.04.29
- 최종 저작일
- 20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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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독일 작센 지방의 츠비카우(Zwickau)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교양이 높은 서적상이며, 어머니는 아마추어이면서도 노래를 잘 불렀다. 일찍부터 음악적인 재능을 나타냈는데, 7세 때 작곡을 시작하여 10세가 지날 무렵에는 이미 오르간곡을 썼다고 한다. 츠비카우의 교회 오르가니스트에게 피아노를 배우는 한편 책을 탐독하여 스콧과 바이런에 경도하고 특히 장 파울(Jean Paul)에게는 평생 변치 않는 경의를 품고 있었다. 또 슈베르트의 리트를 접하고 시와 음악의 완전한 융합에 커다란 감명을 받은 것도 이 무렵이었다.
여인의 사랑과 생애를 작곡하기 직전 1836년(26세) 이래 그는 스승 비크의 딸인 일류 피아니스트였던 클라라(Clara)를 뜨겁게 사랑하여 정식으로 청혼한 적도 있으나, 비크는 슈만(독일)의 불안정한 생활을 이유로 거절했다. 또한 비크는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기 위해 딸을 데리고 연주 여행을 가 버리는 등 끝까지 그들의 결합을 반대하였다. 그러나 재판을 벌인 결과 두 사람의 결혼은 마침내 성사되었다.창작 활동은 이 동안에도 쉼 없이 계속되었으며, 클라라의 도움도 있어서 음악가로서의 지위는 착실하게 쌓아올려져 갔다. 1840년에 염원이던 결혼을 한 뒤부터는 다시 창작 영역을 넓혔는데, 결혼해도 좋다는 법원 판결을 받자마자 슈만이 가장 먼저 작곡한 예술가곡이 바로 [여인의 사랑과 생애]였다고 한다. 특히 이 해는 「여인의 사랑과 생애」외에도「시인의 사랑」(성악곡)의 가곡집을 포함하여 138곡에 달하는 리트가 작곡된 ‘가곡의 해’였다. 어느 것이나 클라라를 얻은 기쁨과 사랑을 노래한 작품이다. 이듬해부터는 다시 규모가 큰 기악곡의 창작이 시작되어, 이 해의 「교향곡 제1번」을 필두로 피아노 5중주곡과 4중주곡이 계속 작곡되어 갔다.
이후 정신병이 재발, 환상과 환청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방을 뛰쳐나가 라인 강에 몸을 던진 사건이 일어났다. 다행히 구조되어 본 근교의 정신 병원에 입원했으나, 병상은 나빠져 2년 후인 1856년 7월 29일 46세의 생애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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