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의 인맥
- 최초 등록일
- 2013.04.24
- 최종 저작일
- 20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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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조선 중기의 위인 이순신 장군(이하 이순신)의 성공이면에서 그를 보필한 수많은 인맥들이 있다. 지금부터 그 파워 인맥들에 대하여 알아보자...
유성룡
1542년 외가인 경북 의성에서 태어난 유성룡은 어린 시절에 이순신과 어떤 친분관례를 맺었고. 어떻게 지냈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이긍익(1736~1806년)의 ≪연려실기술≫를 비롯한 일부 문헌만이 그들의 어릴 적 성향이나 인품을 말해주고 있다. 이제부터 유성룡이 이순신을 보필한 내용들을 알아보자.
첫 번째, 1586년 1월, 당시 예조판서였던 유성룡은 이순신을 종6품 사복시 주부 이순신을 종4품 벼슬인 함경도 경흥고을 조산보 병마 만호(현 대대장)자리에 추천했다고 1597년 1월 27일자 ≪선조실록≫에 나온다.
두 번째, 조일전쟁의 전운(戰雲)이 감돌던 1591년 2월 13일, 종6품 정읍현감 이순신을 정3품 벼슬인 전라좌수사로 전격 발탁했다.
1592년 초, 유성룡은 인사차 자신을 찾아온 이순신 부하에게 개인적인 편지와 ≪증손전수방략(增損戰守方略)≫이라는 병서(兵書)를 선물했다.
<중 략>
유형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창의사 김천일(金千鎰)을 따라 강화에서 활동하다가, 의주 행재소(行在所)에 가서 선전관에 임명되었다.
1594년 무과에 급제, 신설된 훈련도감에서 군사조련에 힘쓰다가 해남현감으로 나갔는데, 1597년 정유재란 때 원균(元均)이 패전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통곡하면서, 통제사 이순신(李舜臣)의 막료가 되어 수군재건에 노력하였다. 남해 앞바다에서의 전투에서는 명나라 제독 진린(陳璘)과 이순신의 곤경을 구하기도 하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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