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세계대전 이전의 조약, 제2차세계대전 이전의 대공황, 제2차세계대전 이전 전체주의, 제2차세계대전 이전 전후처리, 제2차세계대전 이전 국제연맹, 제2차세계대전 이전 뮌헨협정
- 최초 등록일
- 2013.04.16
- 최종 저작일
- 20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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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제2차세계대전 이전의 조약
1. 생제르망(St. German) 조약
2. 느이(Neuilly) 조약
3. 트리아농(Trianon) 조약
4. 세브르(Svres) 조약
Ⅱ. 제2차세계대전 이전의 대공황
Ⅲ. 제2차세계대전 이전의 전체주의
1. 정치․사회적 배경
2. 경제적 배경
Ⅳ. 제2차세계대전 이전의 전후처리
1. 일본
2. 파리평화회의
3. 쌩제르망조약(1919년 9월 10일)
4. 1919년 11월 뉴이이조약(대불가리아)
5. 세브레조약(1920년 8월 10일)
6. 기타국가
Ⅴ. 제2차세계대전 이전의 국제연맹
Ⅵ. 제2차세계대전 이전의 뮌헨협정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제2차세계대전 이전의 조약
1. 생제르망(St. German) 조약
제1차 세계대전 뒤 연합국과 오스트리아 사이에 맺은 조약으로, 1919년 9월 10일 파리 교외의 생제르망 궁전에서 조인되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은 제국 내 여러 민족의 이탈 속에서 1918년 11월에 무조건 항복하였다. 체고슬로바키아․유고슬라비아․헝가리․폴란드의 독립선언에 뒤이어, 오스트리아의 독일인 지역에 새로운 공화국 오스트리아가 등장하였다. 이들 독립 국가를 승인한 이 조약에서는 옛 오스트리아의 전쟁책임은 신생 오스트리아에게만 부과되고, 남티롤의 이탈리아에 대한 양도 등 주변 여러 나라에 대한 영토할양․군비제한․배상지불 등이 규정되었고 독일과의 합병이 금지되었다. 경제조항 등에 양보도 있었으나 많은 오스트리아인은 이것을 가혹한 것으로 받아들였고 법학자는 옛 제국과 새 공화국의 법적 비연속성을 주장하여, 국경을 둘러싼 쟁의는 20년대에도 계속되었다. 베르사유체제의 일환으로서 소국가를 성립시켜 새로운 분쟁의 원인이 되었다.
2. 느이(Neuilly) 조약
제1차 세계대전 후 전승국과 불가리아 사이에 파리 교외에 있는 느이에서 체결된 강화조약으로, 13편 296조로 되어 있으며 1919년 11월 27일에 서명되고 20년 8월 9일에 발표되었다. 이 조약에 의해 불가리아는 그리스에게 에게 해 북쪽의 트라키아를, 또 유고슬라비아에게도 영토의 일부를 할양하고, 군비도 제한 당했다.
배상문제에 있어서는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의 경우와는 달리 불가리아 상선의 인도를 요구하지 않은 채, 배상금으로 94만 파운드를 지불하기로 결정되었는데, 이 금액은 후에 영국․프랑스․이탈리아의 대표들로 구성된 배상위원회에서 3/4으로 경감되었다. 또한 불가리아는 국내 소수민족의 보호를 약속하고 이 조약 또는 다른 여러 조약에 의하여 결정된 국적의 선택을 인정하고, 프랑스의 모로코에 대한 보호권, 영국의 이집트에 대한 보호권을 승인하여 발칸 제국과의 분쟁의 원인이 되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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