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일제강점기, 식민지시대)와 민족의학, 일제(일제강점기, 식민지시대)와 종교계, 일제(일제강점기, 식민지시대)와 교회유착, 일제(일제강점기, 식민지시대)와 대동아공영권 분석
- 최초 등록일
- 2013.04.12
- 최종 저작일
- 20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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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일제(일제강점기, 식민지시대)와 민족주의자
Ⅱ. 일제(일제강점기, 식민지시대)와 민족의학
Ⅲ. 일제(일제강점기, 식민지시대)와 종교계
Ⅳ. 일제(일제강점기, 식민지시대)와 교회유착
Ⅴ. 일제(일제강점기, 식민지시대)와 대동아공영권
본문내용
Ⅰ. 일제(일제강점기, 식민지시대)와 민족주의자
한때 민족운동에 종사하던 변절 친일파들은 그 성향과 변절 시기에 따라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사회적 명망을 갖은 엘리트로서 3.1운동 이후 본격적으로 진행된 일제의 기만적인 문화통치정책에 매몰되어 식민지체제 안에서 민립대학설립운동, 물산장려운동 등 개량적 민족운동을 통해 민족의 실력양성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고자 했던 이들로, 민족운동계의 비난으로 입지가 좁아지자 점차 친일화의 길로 들어선 사람들이다. 대표적인 이는 윤치호, 최남선, 이광수, 김성수, 최린 등이다. 일제는 민족성을 강하게 띨 경우를 제하고는 식민지법의 범위 내에서 총독부의 허가를 받고 진행되는 한, 그들의 민족운동을 체제 위협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둘째, 일제가 식민지 통치 강도를 더해가자 민족운동을 전개하면서도 독립에 항상 회의를 품고 일제의 압력이 거세질수록 더욱 회의하여 급기야 만주사변을 계기로 조선의 독립은 불능하다고 판단하고 변절한 자들이다. 대표적인 이는 서춘, 박희도, 양주삼, 유진오 등이다. 이 당시 민족주의자들을 제외하고 친일활동을 전개했던 인물들은 거의가 변절자가 아닌 직업적 친일분자들이다. 일제는 1930년대로 들어오면서 일체의 민족주의운동을 총독부 관제운동으로 흡수해 버리자 그나마 타협적이며 식민지법의 범위에서나마 민족주의를 고수하였던 민족주의운동가들은 점차 일제가 내던져준 낚시밥을 물고 자신들의 변절을 `민족을 위한 선택`으로 자위하면서 반민족적인 길로 들어섰다.
셋째, 비타협 민족주의의식을 갖고 있거나 일제의 식민지 통치에 대해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였거나, 만주침략 이후 이미 심정적으로는 변절하였으나 행동으로 표출되지 않았던 자들로, 1937년 이후 황민화정책이 본격화되면서 일제의 정신적, 신체적 억압과 협박을 받는 가운데 폐쇄된 정보에 의한 그릇된 정세판단 아래 사상과 신념을 포기하고 이른바 확실히 `전향`을 표방하여 자신의 영달을 꾀하며 조국과 민족을 배신한 이들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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