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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초 등록일
- 2013.03.26
- 최종 저작일
- 20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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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개요
Ⅱ. 고정옥의 생애
Ⅲ. 고정옥의 저작
Ⅳ. 고정옥의 문학관
Ⅴ. 고정옥의 민요연구
본문내용
Ⅰ. 개요
경성이 겪은 변화의 과정은 무엇보다도 ‘도시적인 삶’의 기반 확충이라는 형태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도시기반시설의 확보, 근대적인 시간개념의 도입과 이에 따른 규칙적인 일상을 영위하는 사람들이 점차 증가하는 것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다. 이것은 한국에서 등장한 자본주의적 일상성의 최초의 형태에 해당할 것이다.
먼저 `이동성(movement)`을 그 중요한 특징으로 하는 도시적 삶(Simmel, 1903/1971)을 가능하게 해 주는 여러 가지 도시 기반시설이 차례차례 확보되기 시작하였다.
1920년대에서부터 1930년대 초반까지 경성에 대규모의 근대적 건물 신축 붐
태평로, 남대문로 일대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인데, 이는 대체로 심각한 불경기로 인한 건축자재 값 및 노임단가의 폭락에 따라 저비용에 능률적으로 건축을 가능하게 되었고, 건축업계가 대성황을 맞이하였던 것으로 풀이된다(손정목,1996: 98-9).
도로, 전철망과 같은 교통망이 수립
대표적인 것은 전철인데, 1898년 12월에 남대문에서 청량리까지 최초로 개통된 이래, 1941년 7월에 창경원에서 돈암동 네거리까지의 전철 신설에 이르기까지 총 39,906㎞의 전철망이 수립되었다. 전신전화와 같은 통신망의 구축 역시 보고되고 있다.
그리고 도시의 기반시설 확립과 더불어 근대적인 교통과 통신, 도시환경 속에서 삶을 영위해 나감에 따라 한국인들은 처음으로 근대적인 물리적 ‘위험(risk)’에 노출되었다. 이 시기에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도시 이주민들이 결합되면서 ‘익숙하지 못함’과 ‘부적응성’에서 야기되는 각종 사건사고가 잇따라 발생하였다. 1920년대의 대표적인 ‘위험’은 화재였다(손정목, 1996).『朝鮮總督府統計年報』에 나타난 자료를 근거로 작성한 1921-30년 사이의 화재발생 빈도, 피해액, 사상자의 현황조사에 따르면, 빈도에 있어서는 1929년에 4,789건으로 최다였고 추정손해액은 1923년 738만 7천원으로 최고였으며 사상자 수에 있어서는 1930년에 사망 189, 부상 266명으로 최다였다.
참고 자료
강등학 : 고정옥의 민요연구에 대한 검토, 한국민요학회, 1996
김용찬 : 고정옥의 생애와 월북 이전의 저술 활동, 한민족어문학회, 2005
김용찬 : 고정옥의 시조관과 고장시조선주, 한국고전여성문학회, 2005
김용찬 : 고정옥의 장시조론과 작품 해석의 한 방향 :고장시조선주를 중심으로, KISTI, 한국시조학회, 2005
신동흔 : 고정옥의 삶과 학문세계 (上),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1995
조재훈 : 고정옥의 장르 이해, 공주대학교,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