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흐마니노프
- 최초 등록일
- 2013.03.01
- 최종 저작일
- 20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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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라흐마니노프
목차
1. 생애
2. 라흐마니노프의 대표 작품
본문내용
1. 생애
러시아의 대표적인 피아니스트이며 작곡가로 피아노곡에 걸작이 많다. 지주의 집안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부터 피아노를 익혔고, 1882년(9세) 페테르스부르크 음악원에 입학, 1888년부터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피아노 외에 타네예프(1856~1915), 아렌스키(1861~1906)에게 작곡법을 배웠다.
1892년(19세) 졸업연도에 썼던 피아노를 위한 「전주곡 c샵단조」는, 후에 런던에서 소개되어 호평을 받았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1899년 런던 필하모니 협회의 초대를 받아 작곡가·지휘자·피아니스트로서 인정받게 되었고, 피아노 협주곡의 작곡을 의뢰받았다. 그러나 1897년(24세) 페테르스부르크에서 초연된 교향곡 제1번은 평판이 좋지 않아, 이후 신경 쇠약이 심해져 한때는 창작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1901년(28세) 암시 요법에 의해 겨우 회복될 수 있었던 라흐마니노프는 명작 「피아노 협주곡 제2번」을 완성하여 글린카 상을 받았다. 1906년 드레스덴으로 옮겨 작곡에 전념, 「교향곡 제2번」, 「피아노 소나타 제1번」, 교향시 「죽음의 섬」을 완성했다.
1908년에 귀국, 이듬해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피아니스트로 활약하는 한편 피아노 협주곡 제3번을 뉴욕에서 초연했다. 1910년부터는 귀국하여 모스크바 대극장, 마린스키 극장의 지휘자도 역임했지만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핀란드로 망명해 이듬해 미국으로 건너가, 그 이후에는 자유로운 입장에서 연주와 창작 활동을 했다. 재미중 「피아노 협주곡 제4번 피아노와 관현악을 위한 「파가니니의 주제에 의한 변주곡」,「교향곡 제3번 등의 명작이 완성된 바 있다. 만년에는 스탈린이 귀국을 권하기도 했고, 그도 또한 독·소 전쟁 중에 조국을 위한 모금 연주회를 열었지만, 결국 귀국을 실현하지 못한 채 캘리포니아의 비벌리힐스에서 타계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