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비록 서평,요약
- 최초 등록일
- 2013.02.21
- 최종 저작일
- 20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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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머리말
2. 맺음말
본문내용
징비록은 선조 25년인 1592부터 1598년까지 7년에 걸쳤던 임진왜란의 원인 ·전황 등을 기록한 책으로, 전란이 끝난 뒤 저자 유성룡이 벼슬에서 물러나 안동 하회마을 건너 옥연정사 에서 한가로울 때 저술한 것이다. 또한 징비록은 임진왜란사(史)를 연구함에 있어서는 가장 대표적인 기본 역사적 자료가 된다. 또한, 징비록은 지난 일을 징계하여 뒷날에 있을 수 있는 후환을 삼가게 하게 하려는 책이다.
아래에서 임진왜란 당시의 정서 및 국내 정세 나아가 임진왜란의 폐해를 징비록을 통해 알아보도록 하자.
당시 우리와 일본은 서로에게 사신을 보내 경축하거나 조문하는 예의를 잊지 않았다.
<중 략>
원래 적은 수군과 육군이 합세해 서쪽을 공략하려 했던 것이다. 그런데 거제 싸움에서 패함으로써 한 팔이 끊어진 것이었다. 이렇게 되니 평양성을 점령한 유기나가라 할지라도 지원군이 사라지게 되어 더 이상 진격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전라도와 충청도를 보전하고 아울러 황해도와 평안도 연안 지방까지 지키게 됨으로써 군량의 조달과 통신체계가 확립될 수 있었다. 이는 곧 나라를 회복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고 요동과 천진 지방에 왜적의 손길이 닿지 않게 되어 명나라 군사들이 육로를 통해 우리나라를 구원할 수 있었다. 그 뒤로도 이순신은 삼도의 수군을 거느리고 한산도에 머물면서 적의 교통로를 막았다.
한편 평양이 왜적에게 포위되자 전 의금부 도사 조호익은 강동에서 군사를 모집해 구원하려 했다.
<중 략>
또한 유성룡이 징비록을 저술하게 된 이유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징비록을 보면 왜장인 도요토미 히데요시나 일본군의 만행을 직접적으로 규탄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이 속한 조선 지배층의 허물을 파헤치는 모습이 보인다.
징비록을 읽는 내내 조선의 무능함과 선조의 무능함에 답답함을 떨쳐낼 수 없었다. 특히 명 제독이 전투에서 패하자 군량이 바닥났다는 것을 핑계 삼아 장수들까지 동요하여 유성룡이 “나라의 모습이 어찌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라며 눈물 흘리는 모습에선 임진왜란 당시 피폐해진 백성들의 삶과 울분을 나 역시 공감할 수 있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