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디푸스전작
- 최초 등록일
- 2013.01.01
- 최종 저작일
- 2012.12
- 4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3,000원
소개글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전작을 저주의 관점에서 풀어낸 글입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전작 중 안티고네와 오이디푸스 왕에서 나타나는 공통된 주제는 저주와 인간의 비극적 결말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두 작품에서 저주를 통해 주인공이 비극적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는 점에서, 작품 속 저주가 가지는 의미는 상당히 크다. 저주는 어원적으로 앵글로 색슨어 분노(wrath)에 근거한다. 즉 누군가를 저주한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분노를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저주란 그 대상이 필요하기 때문에 반드시 사회적 관계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우리의 삶에서는 변형된 형태로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연극이나 드라마, 소설과 같은 매체들은 극 초반에 악역의 역할을 강조함으로써 시청자의 분노를 자극해 시청자들이 공통적으로 악역에게 분노를 느끼도록 한다. 그리고 극의 마지막에 악역은 결국 좋은 결말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악역에 대한 저주를 완성시키고, 이로 인해 악역에게 느꼈던 공동체의 분노를 해소하게 해 공동체적인 카타르시스를 관객들이 느끼게 하는 기법을 자주 사용한다. 소설과 같은 인위적으로 조작된 저주 외에 현실에서 저주가 가지는 분노의 특성이 드러나는 또 다른 예로는 뉴스를 들 수 있다. 뉴스에서는 흉악한 악질범들의 모습을 보여주어 도리에 어긋나는 범죄를 저지른 인간은 더욱 가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여론을 형성시킨다. 그런 의미에서 저주는, 사람들의 분노로부터 촉발된 올바르지 못한 행위에 대한 비난과 경고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전작 역시 신의 저주를 통해 올바른 인간상의 모습을 보여준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오이디푸스에게는 저주를 받을만한 어떠한 잘못도 없다. 오이디푸스를 향한 저주는 그의 조상이 직접적인 원인이며, 그는 단지 저주를 받게 된 집안에 태어난 죄(罪)밖에는 그런 비극을 겪을만한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에게 잘못이 있다면, 단지 운명을 잘못 타고난 것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을 읽으면 오이디푸스를 향한 신의 저주에 큰 공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