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운동의 내용과 영향에 대하여
- 최초 등록일
- 2012.12.19
- 최종 저작일
- 20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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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68운동은 대개 프랑스의 1968년 5월 혁명, 또는 프랑스 5월 혁명으로 인식되어져 왔다. 1968년 이전의 상황 속에서 당시 드골 정부의 실정과 사회 모순으로 발생한 대학생을 중심으로 한 저항운동과 노동자들의 총파업투쟁을 의미한다. 하지만 68운동은 단순히 프랑스의 사례에서 뿐만 아니라, 같은 시기 독일에서 일어난 사회주의 학생운동과 당시 동구권에서 소련의 내부나 외부에서 발생한 체코슬로바키아의 “프라하의 봄”으로 묘사되는 일련의 자유민주화 운동과도 시기와 의의를 동시에 갖는다. 전후에 대학생이 되고, 노동자가 된 사람들이 당시의 체제를 용인하지 않고, 경제체제에 있어 현실의 문제를 개혁하는 쪽에서 벌어진 1968년의 일련의 사태들을 모두 묶어 68운동이라 하는 것이 오히려 타당성이 있다. 이번 글에서는 프랑스와 독일의 사례에서 68운동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구축된 새롭게 구축된 일련의 구조가 과연 2010년대에 유럽에 나타난 경제위기와 이를 타개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 그리고 시민들의 저항을 다시 야기하여, 지금은 어떠한 대립구조를 만들어냈는지를 논해볼 것이며, 과연 현재 한국은 이 사태가 어떻게 비견되고 있는지를 살펴보려 한다.
68운동의 시대적 배경을 먼저 살펴보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마셜플랜과 나토를 통해 유럽의 정치질서를 재편하려 했고, 서유럽은 미국 주도의 정치, 경제체제에 편입되어 갔다. 전후 세계질서가 동서간의 냉전체제로 굳어지며, 유럽은 통합체를 구축하며 ECSC, EEC를 구성했고 1967년 드골의 주장대로 유럽공동체(EC)가 출범했다. 전후 프랑스는 식민지인 베트남을 포기하고, 알제리 독립전쟁에 휘말리며 드골이 다시 복귀했다. 드골은 나토를 탈퇴하는 등 독자적 정치노선을 채택하며, 분배보다는 경제적 성장이 치중하는 정책을 실시했다. 반면 독일은 패전의 여파로 동독과 서독으로 나뉘었고, 서독은 반공을 국시로 하며 냉전체제의 최전방에 놓이게 된다. 경제적으로는 마셜플랜의 집중 속에 아데나워 총리의 주도로 1949~1963년까지 ‘라인 강의 기적’을 통해 경제 강국으로 국제사회에 복귀하게 된다. 이를 통해 프랑스와 독일은 전후 베이비붐마저 긍정적으로 작용하며 경제적 호황을 누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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