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고대사(페르시아전쟁)-최종
- 최초 등록일
- 2012.11.18
- 최종 저작일
- 20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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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려대 서양 고대사
목차
1. 각국의 성장 배경
3. 페르시아 전쟁 전개
4. 전후 그리스세계의 상황
5. 결론
본문내용
1. 각국의 성장 배경
①페르시아 전쟁 전 스파르타의 성장과 정치
스파르타는 메세니아를 정복한 후 사회갈등과 농민의 저항이 거세지자 리쿠르고스가 등장해 개혁을 단행한다. 모든 시민들은 이제 부유하건 가난하건 하나의 병영체제 안에서 군인으로서 살아야했다. 절제와 강건함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았다. 이것은 단순히 억압적인 정책이 아니라 계층 간 합의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 당시 지배층이었던 헤라클레스가의 후손들은 평등을 표방하면서도 그들의 기득권과 재산을 유지할 수 있었고, 빈곤층(농민층)은 무적의 엘리트 군대에 들어가게 되면서 그동안 거부당했던 지위를 얻을 수 있었고 물질적 안정까지 덤으로 얻게 되었다. 기원전 540년대 초에는 테게아(평원지역)와 펠로폰네소스 대부분의 도시들을 굴복시키고 패자로서 군림하고 있었다. 유일하게 이에 대항하는 세력은 스파르타로부터 북쪽에 있었던 아르고스였다.
<중 략>
동맹의 금고는 델로스 섬에서 아테네로 옮겨졌고 공세의 1/60은 아테네 신전에 바쳐졌다. 그것은 당연히 아테네의 수입이 되었다. 또한 5000탈렌트의 동맹 자금을 아테네 국고로 수납시켜 아테네 건축사업에 이용했다. 이 동맹기금은 아크로폴리스 신전 재건, 파르테논 신전 건출, 아테나 파르테노스의 황금 상아상, 아크로폴리스의 신전을 재건하는 사업에 이용되었다. 그리고 동맹국의 해군은 사모스, 키오스, 레스보스를 제외하고서는 모두 무장해제시키고 아테네의 편제 아래 두었다. 또한 아테네는 위의 세 국가를 제외한 나머지 동맹국들은 민주정을 강요하였고, 이후 동맹회의도 폐지하여 동맹국 내의 모든 분쟁 사항을 재판료를 받는 조건으로 아테네가 직접 재판하였다. 또 동맹내의 화폐와 도량형을 통일하고 판아테나이아 제전을 제국 제전으로 탈바꿈하였다. 이를 두고 동맹국의 반발이 있을 법 하지만, 아테네는 제국화에 불만을 품고 동맹국들이 이탈하지 못하도록 온갖 군사적, 외교적인 폭력을 가했다. 스파르타는 자국내의 문제로 함부로 아테네의 주변부에 대한 고압적인 태도에 제동을 걸지 못했다. 그것은 펠로폰네소스 전쟁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