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통신사, 역사학과 전공과제, 한일문화교류사
- 최초 등록일
- 2012.10.15
- 최종 저작일
- 20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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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통신사에 대한 레포트입니다. 역사학과 전공과제로 제출한 것입니다. 100% 완벽하다고 자평할 수 없지만 일본인 저자의 글을 정리한 것으로 조선통신사에 대한 참고자료로 유용할 것입니다.
목차
1. 들어가며
2. 에도이전의 조일관계
3. 통신사의 재개
4. 통신사 행렬
5. 통신사를 통해 진행된 조일문화교류
6. 통신사 폐지와 그 후
7. 마무리
본문내용
1. 들어가며
한국과 일본은 2000여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깊은 관계를 맺고 지내왔다. 각자의 역사에서 서로를 완전히 분리시키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긴 시간동안 교류를 했던 두 나라는 16세기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시작한 두 차례의 침략전쟁으로 그 이전부터 이어오던 교류의 끈은 끊어졌다. 하지만 서로의 필요에 의해 다시 교류를 시작했고, 전쟁 이 후 200여 년간 그 교류는 통신사라는 이름으로 이어졌다.
통신사에 대해서는 조선과 일본에서 서로 다른 견해를 보여, 신의와 교린의 상징으로 보기도 하고 조공사절이나 사대대행으로 보기도 했다. 양국의 평화와 문화교류의 상징으로서 통신사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재평가를 통해 우호적인 한일관계를 이루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중 략>
조선시대의 한류라고도 표현되는 조선통신사의 행렬을 좋게만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다. 당시 지식인 중엔 통신사를 조공사절로 인식하거나 일본서기의 내용처럼 신공황후의 삼한정벌 이후에 일본의 속국이 된 조선과 대등한 교류관계를 갖는 것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도 존재했다. 또한 당시 양국의 사정이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특히 일본은 대기근과 백성들의 반란으로 국내정세가 복잡한데다 조선통신사의 대접에 쓰는 비용이 부담이 되는 상황이었고 그렇다보니 자연스레 통신사 초청을 연기하게 된다. 당시 로주중에 조선과 대등한 교류를 반대하던 나카이 지쿠잔은 “원래 이 통신사가 일본에 오는 것은 결코 아름다운 모양이라고는 할 수 없고, 간혹 일본의 썩은 유생들이 모두 나와 계림을 창화하고자 하는 것이 본래의 뜻이라고 생각한다.”라는 의견을 피력함으로 조선을 멸시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조선멸시관은 18세기 말 19세기에 이르러 일본에 밀려들어오는 서구세력을 막아내기 위한 신국사상으로 확산되어 일본과 조선의 관계를 대등한 관계에서 상하관계로 변질시키는 정한론으로 대두된다. 이러한 정한론은 초기엔 일종의 혁명운동으로 시작되었지만 결국엔 아시아 침략사상으로 연결된다.
참고 자료
<<조선통신사이야기 -한일 문화교류의 역사->>, 나카오 히로시, 유종현 옮김, 2005, 한울
<<조선통신사와 일본>>, 미야케 히데토시, 김세민 외 옮김, 1996, 지성의 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