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정부의외무장관 레포트제출
- 최초 등록일
- 2012.07.14
- 최종 저작일
- 20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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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5.16과 미국과의 관계>
2. <주영 대사 부임>
3. <유럽 친선사절단장>
4. <주영대사 시절>
5. <필리핀 전근>
6. <외무장관 발령>
본문내용
<5.16과 미국과의 관계>
△5.16 前夜
-1961년 4월 초, 주영 대사 자리가 오랫동안 공석으로 남아있는 것에 대해 영국 정부는 한국 정부의 주의 환기. 그리고 장면 총리는 김용식 차관을 임명하고 싶어 함.
-당시 주미 대사 경험을 갖고 있던 장면 총리는 미국과 영국이 동맹국으로서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주영 대사 임명을 재촉.
-5월 12일, 김용식 차관은 그렇게 주영 대사로 임명이 되고 4일 후, 5.16 발발.
<중 략>
<외무장관 발령>
△군정 연장&외무장관 발령
-1963년 3월 16일, 박정희 의장이 군정을 4년간 연장하기로 결정함과 동시에 김용식 외교관의 외무장관 발령 결정. 이는 박정희 장군이 국가재건을 위해 일본과의 관계 정상화를 서두르기 위해 한 결정.
-미국 측의 군정 연기 반대. 미국과의 관계 냉각. 미국과의 관계 개선 급선무.
-라이샤워 주일 대사와의 만남에서 한ㆍ미 관계 토의.
-5.16은 자유 진영의 지도자인 미국의 입장을 거북하게 만들었고 미국은 민정이양을 요구. 그러나 3월 16일 박정희 의장이 민선정부에 정권을 인계할 의사가 당분간 없음을 분명히 발표.
-혁명 정부는 한미 관계가 벽에 부딪치고, 대일 관계의 정상화도 어려워진 1963년 3월 대외관계의 국면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 일본과의 문제 해결에는 우선 미국과 원만한 관계가 형성돼야 하는데 대한민국은 입법기관이 없어 미국의 정치적 지지를 받기가 어려웠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