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과 관련된 문제들을 공적인 장에서 토론하는 것이 왜 어렵지만 중요한지에 대해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논의
- 최초 등록일
- 2012.03.26
- 최종 저작일
- 20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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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분단과 관련된 문제들을 공적인 장에서 토론하는 것이 왜 어렵지만 중요한지에 대해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논의함
목차
Ⅰ. 서 론
Ⅱ. 분단과 관련된 문제들을 공적인 장에서 토론하는 것이 왜 어렵지만 중요한지에 대해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가면서 논의
1. 분단과 관련된 문제들을 공적인 장에서 토론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
2. 통일 환경의 변화에 대응 –
3. 남북한 간의 특수관계론 조율 -
4. 남북한 간의 비대칭성 극복 -
5. 사실관계의 규명 노력 -
6. 주변국의 이해관계 -
7. 통일 논의 -
Ⅲ. 결 론
본문내용
Ⅰ. 서 론
통일방안으로 1989년 이후 이루어진 보수혁명으로 인해 예맨과 독일이 통일을 이루게 되는데 우리도 그 시기를 활용했어야 하는 기회가 좋은 국제적 환경이었음을 아쉬워하고 당시 남북 기본합의서와 유엔 동시가입이란 성과에 만족해야만 했다.
이 시기에 좀 더 적극적으로 북한에 접근하여 경제발전을 꾀했다면 북한을 조금 정상적인 국가로 이끌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되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고 결국 이러한 우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의 통일은 외세의 영향에 있으므로 일본 미국 중국 러시아 등과 적극적으로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노력을 하고 이런 노력 속에 대외 환경이 외부로부터 자유로운 시기가 온다면 기회를 활용하여 남북한이 통일로 가는 길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현재는 주변국들과 관계형성을 돈독히 하는 외교력을 발휘할 때이다.
1972년 7.4,남북 공동성명은 우리의 자구적인 노력의 소산이 아니라 국제정세 영향으로 이루어진 어쩔 수 없는 생존방식이었다는 분석도 있다.
즉 월남전에서 패전으로 발을 뺀 미국이 아시아는 아시아인의 손으로 해결하라는 "닉슨독트린"에 의거 미군철수가 이루어지고 이에 힘의 균형에서 밀린 박정희 대통령이 서둘러 김일성 손을 잡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단순한 시간벌기로 이루어진 것이고 그 후 자구책으로 핵개발도 불사하는 발언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하는데 이런 것들이 국내적 문제보다는 국제정세의 변화에 영향 받은 바가 크다고 한다.
그렇게 인정할 수 없었던 유신체제가 70년대를 돌파해야하는 국제정세의 대응전략의 일환이었다고 하니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1990년대 이래의 남북관계는 바로 특수관계 논리를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또 변해온 것이라 할 수 있다. 남북한은 서로의 체제를 인정하고 상호존중과 신의의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일반적인 국가관계와는 다른 민족 내적 관계라는 점에 근거하여 남북관계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2005년 12월에 제정된 남북관계발전에 관한 법률도 “남한과 북한의 관계는 국가 간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특수관계이다”라고 정의하고 그에 기초하여 “남한과 북한간의 거래는 국가 간의 거래가 아닌 민족내부의 거래로 본다.”고 명시하고 있다.
참고 자료
과학의 양심 천안함을 추적하다, 이승헌, 창비(창작과비평사), 2010
천안함을 묻는다, 강태호, 창비(창작과비평사), 2010
천안함 피격사건 백서, 대한민국정부 편집부, 2011
12시간의 통일 이야기, 노태돈, 도진순, 이태진, 하영선, 고유환, 조동호, 민음사,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