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자도의 번영과 몰락
- 최초 등록일
- 2012.03.23
- 최종 저작일
- 20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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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정말 자세하게 정리하였습니다. 잘 할용하세요!!
목차
Ⅰ. 머리말
Ⅱ. 임자도 새우잡이
1. 임자도 전장포
2. 새우잡이, ‘오젓과 육젓’
3. 새우어장, ‘전장포 앞뿔’
4. 새우잡이 어선, ‘멍텅구리배’
Ⅲ. 임자도 파시
1. 파시의 형성
2. 임자도 타리파시
Ⅳ. 맺음말
본문내용
Ⅰ. 머리말
섬은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생산과 생활의 공간이다. 섬사람들에게 바다는 여러 가지 다양한 의미를 갖고 있다. 바다는 이들을 육지로부터 분리시키지만, 동시에 어디든지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장벽 아닌 장벽이다.1) 그리고 바다는 섬사람들에게 자원을 제공하고 섬사람들은 그 자원을 이용하여 살아간다.
임자도는 사토질의 땅에 특히 자연산 들깨가 많이 생산되는 곳이라 하여 임자도란 유래를 갖게 되었다. 선사시대와 청동기/철기 시대에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흔적으로 패총과 토기 그리고 지석묘인 고인돌 등이 발견되어 학술적 뒷받침을 하고 있으며 삼별초 소탕을 이유로 한 공도령2)과 왜구 약탈의 치안 부재로 조선시대에 섬을 비우라는 공도정책 등으로 정든 집과 농토 등을 뒤로하고 인근 육지인 영광의 낙월도로 이주하여 지척의 고향을 그리며 100년이 넘도록 풀리기만 기다리며 타향살이를 했던 임자도 사람들의 고통은 그 어느 지역보다 심했으며 이후 최초 주민의 입도 시기는 17세기 초 김해 김씨를 비롯한 4개의 성씨로 조사되고 있다. 또한 임자도는 6.25전 까지만 해도 대광해수욕장 바로 앞에서 민어와 부서(부세)가 많이 잡히는 곳이라 일본과 중국어선 등으로 물 반 고깃배 반의 바다였었다. 특히 일본 기생들이 뭉탱이 돈을 벌어 갔던 민어 파시로 유명한 타리도와 6.25 이후 70년대까지 파시 조성 지역인 재원도 등 유인도 3곳과 무인도 60여개로 되어있으며 바다를 경계로 남으로는 자은도, 북으로는 영광군 낙월면과 인접해있고 동일군의 섬으로 지도와 증도가 주변 관광지로 자리하고 있다. 2011년 현재 인구 3700정도에 면적의 크기는 46.60km²로 목포의 크기보다는 좀 작은 편이고 지형은 구릉이 없이 완만하고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고 중심부에는 넓은 면적의 평야가 있어 면민의 85%가 농업에 종사하며, 사면이 늘 푸른 바다와 접해 있어 아름다운 해상공원을 연상케 하고 철따라 특유의 맛을 자랑하는 고급어종이 포획되어 어민의 소득증대에 크게 기여하고 농어업 복합형태의 전형적인 농어촌 면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3)
참고 자료
박광순·김승, ?우리나라 젓새우잡이 어업의 발전?현황?과제」 『한국도서연구 제10집』, 한국도서(섬학회), 1999
김준,「갯벌생태의 변화와 어민생활」『해양생태와 해양문화』영인문화사. 2003
김영회,『섬으로흐르는역사』동문선, 1999
박정석「공간과 장소를 통해서 본 어업공동체」『한국민족문화 제26호』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2010
나승만「임자도 새우잡이 젓중선의 어로민속지」『해양생태와 해양문화』영인문화사. 2003
김 준,「젓새우잡이의 역사와 어로문화」『도서문화 제31집』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 2008
박종오, ?서남해안 멍텅구리배의 어로신앙에 관하여?『한국민속학 제38권』한국민속학회, 2003
이경엽, ?임자도의 파시와 파시사람들」『도서문화 제24집』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