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공
- 최초 등록일
- 2011.06.22
- 최종 저작일
- 20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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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중국 공산주의에 대한 글입니다.
목차
Ⅰ. 들어가며
Ⅱ. 군벌시대와 국공 합작
1. 군벌시대
2. 국민혁명과 제 1차 국공 합작
3. 남경 국민정부
4. 제 2차 국공 합작
Ⅲ. 중화인민 공화국 성립
1. 국·공 내전과 중공 성립
2. 중공 초기의 신민주주의 정책
3. 사회주의 개혁 정책
Ⅴ. 대약진 운동
1. 배경
2. 내용
3. 실패원인
Ⅵ. 나가며
본문내용
Ⅰ. 들어가며
2011년 중화인민 공화국이 수립 된지도 62년이 되었다. 현재 중국은 미국의 뒤를 잇는 경제 강대국으로 주목 받고 있다. 현재의 중국이 완성되기까지는 내적․외적으로 혼란스럽고 불안한 현실을 겪어내야 했다. 원세개가 죽고 내적으로는 군벌의 횡포, 외적으로는 제국주의 열강 세력들의 간섭에 처해 있었다. 군벌을 타도하고 반제국주의 운동의 과정에서 국민당과 공산당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 확대하기 위해 대립하기도 하고, 국․공 합작을 통해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려 노력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상이 다른 두 개의 당이 한 국가 내에서 공존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고, 국․공 합작 전부터 결렬에 이르기까지 주도권 다툼을 지속한다. 이러한 내전에서 공산당이 승리함으로써 중화인민 공화국을 세우고, 근대화 및 경제발전을 위한 여러 가지 정책을 실시한다. 이번 발제에서는 중화인민 공화국이 수립되는 배경과 과정 그리고 중화인민 공화국이 실시한 정책들을 알아보고자 한다.
Ⅱ. 군벌시대와 국공 합작
1. 군벌시대
군벌이 형성되고 확대 된 배경에는 중앙정부의 군벌에 대한 통제력 상실,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자금을 백성들에게 떠넘기는 사회적 상황에서 백성들은 자발적으로 군 모집에 응하였다. 또한 국가보다는 지역에 기초한 보수성이 작용했다.
1916년 원세개가 죽고 나서 총통에 여원홍, 부총통에 풍국장, 국무총리에는 단기서가 임명된다. 원세계의 직계부대인 북양군벌은 풍국장 주도의 직예파, 단기서 주도의 안휘파, 봉천파로 나뉘어 북경정권을 장악하기 위해 치열한 다툼을 벌였다. 일종의 파벌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북경정권의 장악은 중앙정부로서의 정통성을 확보하고, 열강의 차관과 관세를 관리하는 권리를 가질 수 있었기 때문에 중요했다.
제 1차 세계대전의 참전여부를 두고 여원홍과 단기서가 대립하는데, 단기서가 국회를 협박해서 참전안을 통과시키자 여원홍은 단기서를 해임시키고 장훈을 부른다. 하지만 장훈은 청의 마지막 황제인 부의를 재위에 추대하는 복고적인 정변을 일으킨다. 이에 단기서는 다시 장훈 세력을 진압하고 공화정을 유지한다는 명분으로 복귀한다. 이후 안휘파로 구성된 안복국회가 구성된다. 이에 쑨원은 안복 국회의 비정통성을 지적하며 호법운동을 일으키고, 안·직 전쟁으로 봉천파와 직예파의 연합 군벌은 북경정권을 장악한다. 그러나 다시 1차 직·봉 전쟁으로 직예파가 정권을 장악한다. 하지만 또 2차 직·봉 전쟁으로 봉천파가 승리함으로써 단기서가 임시 집정자가 된다. 이렇듯 북방 군벌들이 혼란스러운 틈을 타 장제스의 국민 혁명군은 북벌을 개시한다.
지방군벌은 자신의 세력 유지를 위한 군비를 농민과 상민층의 세금으로 재정을 조달해왔다. 토지세는 미래의 것 까지 걷고, 새로운 지배자가 등장하면 이전의 것을 인정해주지 않아 새로 내야 했다. 부과세나 잡세 또한 수탈이 이루어졌는데,
참고 자료
<단행본>
김희영, 『이야기 중국사 3』, 청아출판사, 2006.
오코무라 사토시, 『새롭게 쓴 중국 현대사』, 조합공동체 소나무, 1987.
요코야마 히로야키, 『중화민국사』, 신서원, 2000.
윤혜영·신성곤, 『한국인을 위한 중국사』, 서해문집, 2007.
<논문>
나태종, 「중화인민공화국 성립과정 연구:근대화운동과 국공의 협력과 갈등을 중심으로」, 한국군사학회, 2010.
심영수, 「중국의 대약진운동이 실패한 원인 (경제적인 측면을 중심으로)」, 순천향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