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후의 출생 및 일생
- 최초 등록일
- 2011.05.17
- 최종 저작일
- 20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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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후는 원래 그녀의 공식적인 칭호가 아니다. 태후(太后)는 황제의 모친을 일컫는 말로 서태후에서 `서`자는 `西`이다. 즉, 황제 모친의 정실은 동<東>으로 후실은 서<西>로 표현한다. 서태후(1835~1908)의 성은 예허나라(葉赫那拉), 이름은 옥란(玉蘭) 또는 난아(蘭兒)이다. 함풍황제(咸豊皇帝: 1831~1861)의 의귀비(懿貴妃)이자 동치황제(同治皇帝: 1856~1875)의 생모이다.
서태후의 출생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1999년 4월 문화부 중국예술연구원에서 주관한 "공화국사회주의 문학예술 50년 세미나"에서 유기가 편찬한
《베일 벗은 자희의 유년시절이 논문》에서 유기는 서태후의 출신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1835년 서태후는 산서성 장치현 서파촌의 한 가난한 한족 농민집안에서 태어났으며 이름은 "왕소겸(王小謙)"이었다. 4세 때 장치현 상진촌의 송사원에게 양녀로 팔려가 이름을 "송령아"로 바꾸었으며, 12세 때 다시 노안부 지부 혜징에게 시녀로 팔려가 이름을 "옥란(玉蘭 : 난아 蘭兒라고도 함)"으로 고쳤다.
1852년 예허나라 혜징의 딸이라는 신분으로 궁녀에 선발되어 입궁하였다.
1851년 자희(옥란)는 예허나라씨 중에서 궁녀로 선발되어 그 이듬해 5월 9일 17세의 나이로 입궁하여 귀인에 책봉되었다가 1855년 2월 의빈으로 승격되었다.
1856년 3월 자희는 아들 재순(동치황제)을 출산하여 의비, 즉 비(妃)에 봉해졌다가, 그 이듬해에 다시 의귀비, 즉 귀비(貴妃)에 책봉되었다. 궁녀에서 귀인을 거쳐 귀비에 이르기까지 지위가 계속적으로 상승하면서 그녀의 마음 속에는 정권을 장악하고픈 욕망이 점점 커져 갔다.
1860년 영·프 연합군이 북경으로 진격해 들어가자 그녀는 함풍황제를 따라서 열하(지금의 하북성 승덕)의 피서산장으로 몽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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