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참사의 개요와 폭력성 논란, 여론조작 논란, 한국 행정의 문제점
- 최초 등록일
- 2011.01.03
- 최종 저작일
- 20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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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용산참사의 개요와 폭력성 논란, 여론조작 논란, 한국 행정의 문제점 및 전반적인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목차
□ 용산참사 개요
□ 용산참사 발생 직후
□ 용산참사 논란
□ 용산참사로 보는 한국행정의 문제점
□ 결론
본문내용
이명박 정부 이후 국민과 행정부 간의 의사소통의 부재로 인해 사회적 위기로 볼 수 있는 광우병 사태로 인한 촛불시위가 일어났으며 이는 곧 대정부 신뢰 저하로 귀결되었다. 그리고 일어난 용산 참사는 의사소통의 부재가 얼마나 심각한 사회적 위기를 불러오며 이는 곧 국가위기로 치달을 수 있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에 대해 MBC의 신경민 전 앵커는 이러한 무리한 진압 작전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하고 있다.
“용산의 아침 작전은 서둘러 무리했고, 소방차 한 대 없이 무대비 였습니다. 시너에 대한 정보도 준비도 없어 무지하고, 좁은 데 병력을 밀어 넣어 무모했습니다. 용산에서 벌어진 컨테이너형 트로이 목마 기습작전은 처음부터 끝까지 졸속 그 자체였습니다. 법과 질서란 목표에만 쫓긴 나머지 실행 프로그램이 없었고 특히 철거민이건 경찰이건 사람이라는 요소가 송두리째 빠져 있었습니다.” 이렇듯 나는 이번에 용산참사에 대해서 초점을 두어서 따른 한국행정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에 대해 알아 보겠다.
□ 용산참사 개요
2009년 1월 19일 오전 5시 33분경 용산 4구역 철거민과 전국철거민연합회 회원 등 약 30여명이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로 2가에 위치한 5층짜리 상가건물 옥상을 점거하였고 이에 맞서 경찰은 경비 병력으로 3개 중대 300여명을 투입하였다. 이 과정에서 철거민들은 옥상건물 위에 망루를 짓고 상당량의 가연성 물질인 시너를 옥상에 준비하는 동시에 화염병과 돌을 던지며 철거반에 저항하였고 이에 대해 경찰은 물대포를 쏘며 대치하게 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