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당 김시습 ‘탈주’와 ‘해체’의 기획
- 최초 등록일
- 2010.08.09
- 최종 저작일
- 20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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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매월당 김시습 ‘탈주’와 ‘해체’의 기획
목차
▶ ‘신세모순’과 방외로의 ‘탈주’
▶불락양변(不落兩邊)’의 사유와 중심의 해체
▶ 시 세계와 소설 세계
▶ 나오며
본문내용
▶ ‘신세모순’과 방외로의 ‘탈주’
조선시대 사대부의 삶의 양식은 크게 `출(出)`과 `처(處)`의 두 유형으로 나뉘는데, `출`이 중앙의 관인으로 나아감을 뜻하는 데 대해 `처`는 시골의 전원으로 은퇴함을 뜻한다. `출처`는 정치권력에 대한 개인의 입장과 그에 따른 삶의 자세를 결정하는 개념으로 사대부 사회에서 특수하게 중대한 의미를 담고 쓰였던 바, 관직에 나아가서는 치군택민(致君澤民)의 관료적 생활을 이상으로 삼고, 속세로 물러나와서는 음풍농월의 처사적 생활을 모범으로 설정하였다. 이러한 `사`와 `대부`라는 생활 처지의 양면성은 그들의 문학에서도 그대로 관철되었다. 경국(經國)의 문장으로 불후의 성사(盛事)를 장식하는 관각(館閣). 관료문학과 일세(逸世)의 정취를 추구하고 한적한 인생을 자락(自樂)하는 강호(江湖). 처사문학이 그것이다. 이 두 경향이 사대부 문학의 기본 성격을 이루는데, 그것은 한 문인의 내부에서 모순을 일으키지 않는다. 시대 조건이나 정치적 역학 관계 그리고 개인의 삶의 방향 등에 따라 출과 처가 결정되고, 그에 따라 두 문학 경향은 한 문인에게 얼마든지 공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보면 김시습이 선택한 은거의 경우도 크게 보아 ‘처’의 관점에 포섭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그의 은거는 ‘출/처’라는 틀로는 설명할 수 없는 성격을 갖고 있다. 김시습은 경제적 토대가 전혀 없거나 그것을 완전히 포기한 상태에서 은거의 길을 선택하였던 것이다.
‘조선의 통치체제가 나름의 합리적인 방향에서 점차 벗어나게 되자 벼슬하는 일이 아첨으로 임금에 영합하거나 문장으로 이록(利祿)을 구하는 것이 되고, 이에 대한 반발로 처사적 은둔의 방식이 나타났지만, 이 방식도 따지고 보면 지방의 지주로서 전호(佃戶)와 노비의 노동에 기생하면서 예속(禮俗)에 자신을 속박시켜 두는데 지나지 않은 것이었다.’ 요컨대 전통적 은거의 길은 먹고 사는데 곤란이 없는 경제적 여유 위에서 정신적 초탈을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었던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김시습의 은거는 전통적인 은거의 길과는 전혀 다른 성격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