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문화적 경관을 지닌 안동문화권의 서원들을 답사하고
- 최초 등록일
- 2010.05.30
- 최종 저작일
- 20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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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낙동강 유역 일대의 유교문화권 내에 위치해 있는 서원들을 답사하고 쓴 보고서입니다. 병산서원, 도산서원, 소수서원 및 영주 선비촌마을, 예천권씨 마을 내 서원 등을 직접 답사한 후 이 장소들이 지니는 경관 및 의미들에 대하여 정리하였습니다.
목차
① 병산서원
② 도산서원
③ 소수서원과 영주 선비촌마을
④ 서원의 자격이 없는 서원 (예천 권씨 마을 내에 위치한 서원)
◈ 조사자료 : 서원에 대하여 ◈
본문내용
① 병산서원
병산서원은 경북 안동시 풍천면 병산리에 위치하고 있는 서원으로 고려 중기부터 있던 풍산 류씨의 교육기관인 풍악서당을 그 모태로 하여 건립 된 서원이다. 병산서원은 병풍처럼 서원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산인 병풍산과 낙동강 원줄기를 바라보고 있는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만대루에서는 기둥 사이 사이로 보이는 병풍산의 광경을 마치 7폭 병풍처럼 바라볼 수 있는데, 이러한 만대루는 약 700년 전 학생들의 휴식공간으로서 이용되던 곳이다. 만대루는 ‘해와 달을 늦게 대한다는 뜻’으로 서원 앞의 병풍산이 높아 해와 달이 한참 솟아올라야 그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만대루의 기둥은 그 뼈대와 골격이 350여년 전 원형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병산서원은 자연지형을 이용한 자연 친화적 공간이며 자연과 건축과의 조화를 적절히 이루어낸 공간이다. 건물을 통해 주변의 풍광을 감상하는 과정에서 학문과 휴식을 조화를 추구할 수 있으며, 앞으로 펼쳐진 낙동강의 원줄기와 모래백사장, 소나무 등의 풍광을 통해 유교적 이상과 관념을 잘 드러내고 있다.
병산서원 내부에 자리잡고 있는 입교당은 서원의 강당이다. 동쪽의 온돌방인 명성재와 서쪽에 위치한 경의재, 명성재와 경의재 사이의 마루로
◈ 조사자료 : 서원에 대하여 ◈
조선시대 서원의 출발은 1543년(중종 38) 풍기의 군수로 있던 주세붕이 그 곳에 백운동 서원을 창설하면서라고 한다. 이후 서원에 대한 나라의 사액도 증가되어 조선사회를 이끌어가는 실질적인 거점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선현에 대한 제사와 후진에 대한 교육을 통해서 향촌사회에서 사림세력의 거점으로 자리한 서원은 유교의 가르침에 입각한 엄격한 질서와 검소하고 질박한 조형을 원칙으로 하였다. 그러면서도 성리학적 자연관과 향촌 지배층으로서의 위세를 나타내는 건축표현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서원을 구성하는 중심 건물은 사당과 강당이며, 이 밖에 학생들의 숙소인 재사 및 서책이나 목판 등을 보관하는 서고가 딸리고 건물을 관리하는 고직사 외에 사림들이 집회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누각을 갖추는 것이 보통이다. 서원 내 건물들은 대개 일정한 배치상의 원칙을 갖고 있었다. 문이나 누각, 강당, 사당이 일직선상에 배치되고 사당을 제일 뒤편 전체 건물배치가 정연한
참고 자료
없음